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

 

어차피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커질 것이므로, 한 번은 밝혀야 할 일이기에, 더 늦어지기 전에 지금 시점에서 밝힙니다. 아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이미 마음이 정해진 분은 읽을 필요가 없고, 이유라도 들어 보자는 분만 읽으시면 됩니다.

 

-------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 개인이 아니라 후보가 함께 하는 집단이다. 투표 행위란 특정 정치 세력과 맺는 채권-채무 계약이다. 내가 표(정치권력)를 주면서 권리를 얻고 표를 받은 쪽에서 의무를 지게 되는 계약.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신뢰관계이다. 채무자가 의무를 잘 이행할 수 없는 존재라면, 계약을 맺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다. 일단 계약이 성사된 뒤에는, 채무자는 언제든 먼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 이상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정치철학의 이상적 상황이라면 온갖 논리적 계산을 다 해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는 채권자인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본래는 공권력 내부에 견제 장치가 잘 마련되고 견제가 잘 작동해야 하겠지만, 그건 이상적인 얘기일 뿐이며, 놀랍게도 좋은 제도를 만드는 일조차 공권력에 기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촛불의 경험은 계약을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주었다고 본다. 요컨대 계약을 잘 맺는 일이 필수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평론가 입장이 아니라 당사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치세력은 어디일까? 후보자는 특정 정치세력의 대표이며, 대표인 한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갖지만, 그 정치세력의 자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게 되면(이건 대통령제건 내각제건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세력이 공권력을 분점하기 때문에(이건 당연하며, 계약의 내용이다), 결국 중요한 건 세력의 성격이다.

 

어떤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당 정치세력의 역사를 보면 얼마나 신뢰해도 좋을지가 보인다. 나는 시민단체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데, 그건 공권력과 비교했을 때 권한의 규모가 너무도 작을 뿐 아니라, 선출된 권력이 갖는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정당성은 결국 어떤 일을 행해왔는가, 얼마나 잘 해왔는가에 대한 역사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나는 바로 그 역사의 잣대를 정치세력에 들이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이 지점에서 현실정치의 작동 원리를 무시한 채 무정부주의를 주장하거나 정치혐오로 돌아서는 것 역시 부작위에 의한 작위임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무정부주의나 정치혐오는 당사자인 나의 삶의 조건을 만드는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강제로 세금을 내고 강제로 법규를 따라야 한다. 그 강제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면 언제든 벗어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 것이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이면, 한가하게 훈수를 둘 수 없고 평론을 할 수 없다. 적극적 참여 말고는 답이 없다. 절박함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절박함 앞에서 어떤 정치세력과 계약을 할 것인지 결심할 수밖에 없다. 정치세력 바깥이란 없으며, 각 세력 간의 편차가 있을 뿐이다. 그 편차는 결코 작지 않으며, 특히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차이는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마련이다. 해당 정치세력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왔는지 준엄하게 평가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평가 잣대는 꼭 어떤 세력에만 들이댈 일은 아니며, 개인이나 개별 단체에도 들이대어야 할 테지만, 지금 따져보는 건 대통령 선거에 어떻게 임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이나 개별 단체는 건너뛰는 것일 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다섯 세력이 계약하겠다고 나섰다. 이미 성격이 분명한 세력들이다. 공약을 보고 판단하는 게 좋다는 견해가 많은데, 공약은 계약 내용에 불과하고, 약속을 지킬지 아닌지가 지금 시점에서는 더 중요하다. 계약 내용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계약의 지킬 의향과 지킬 수 있는 힘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의향의 문제는 역사를 놓고 평가하면 되는데, 이 점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남는 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힘이다. 대한민국에서 모든 굵직한 법률은 의회에서 개폐된다. 이것은 대통령 선출과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이며, 차기 국회의원 선거까지 가야 변경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미 작년 봄에 국민이 의회 구성을 현재 상태(에 가깝게)로 결정했다. 의회라는 공권력은 현재의 정치 지형의 상수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현재 어떤 정치세력도 단독으로 과반이 아니기 때문에 여소야대는 필연적이다. 이 상황에서는 어떤 형태로건 세력 간 정치 연합이 불가피하다. 법을 통과해야 하고, 예산안을 승인해야 하니까. 세력 간 거래는 불가피하다. 어떤 거래가 이루어질까? 그 경우의 수를 따져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뭔가를 얻으려면(법안 통과), 뭔가를 내줘야 한다(법안 내용 변경 또는 다른 법안 끼워서 통과). 자, 어떤 거래가 오가게 될까? 이런 다자간 거래 상황에서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력이 가장 크게 얻어간다. 오늘 현재 더불어민주당 119석, 자유한국당 93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33석, 정의당 6석이며, 기타 8석이다. 이 조건에서 생각하기 싫더라도 현실적 산수를 해 보자. 과반을 법안 통과의 조건이라고 본다면, 정의당은 적어도 다른 세 당과 거래해야 한다(자유한국당과의 거래는 없다고 친다). 바른정당은 더불어민주당하고 거래하지 않으면 자유한국당 및 국민의당 둘 다와 거래해야 한다(여기서 정의당은 변수도 못 된다).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거래하지 않으면, 적어도 두 정당과 거래해야 한다. 자유한국당도 국민의 당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세 당 중 하나와 거래하면 된다(정의당은 별 소용없다). 의회만 놓고 보면 캐스팅보트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가장 큰 의회권력을 가진 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이런 힘의 분포는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민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게 차기 대통령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맞닥뜨려야 할 정치 조건이다. 나는 약속을 지킬 현실적 힘이 어디에 있는지 판단한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은 꼭 덧붙이고 싶다. 내가 만들었던 개혁당의 주요 계보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으로 갈라져 계승되었다는 점도 환기하고 싶다.

 

내가 제시한 두 가지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기준에는 동의하지만 평가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존중한다.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부적인 지적 사항이 많으리라 본다. 친한 친구하고도 세부에서 많이 다투었으니, 내게 그걸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민주당은 214만 명이 넘는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했고, 그 후보가 문재인이다. 문재인 개인에 대해서 말하는 건 현재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최근 후보 개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데 이건 이런 규모의 선거에 접근하는 잘못된 길이라고 본다. 물론 나는 국민경선에서 권리당원으로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으며, 개인에 대한 평가는 5년 넘는 추적관찰에 의거했다는 점만 밝히고 싶다.

 

나는 이상의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를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한다. 내가 거칠게 다룬 부분이나 추상적으로 논한 부분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거야 이미 다 알고 있거나 금세 알 수 있는 것들이라서 그리 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공개적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어떤 정치적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집요하게 분석할 생각이며,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그런 부분은 끊임없이 들춰 내보일 것이다. 그건 철학자로서의 과제이기도 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문살인의 전말 (김동렬 펌) [5] 철학자 2009.05.24 254358
공지 애도 노무현 [3] 철학자 2009.05.23 286993
공지 He will and should and must be back [5] 철학자 2009.04.18 260126
공지 그 때는 우리가 참 강했다 철학자 2008.02.22 276251
396 번역이란 철학자 2017.04.18 58
395 서양에시 시간의 어원 철학자 2017.04.14 136
394 컴퓨터와 마음 강의노트 6강 secret 철학자 2017.04.13 852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 철학자 2017.04.10 83
392 정신 차리고 혁명을 (D.H. 로런스) (시 번역) (이전) 철학자 2017.04.06 99
391 컴퓨터와 마음 강의노트 5강 secret 철학자 2017.04.06 525
390 내 인생의 철학적 스승 (이전) 철학자 2017.04.04 1069
389 한국 철학 또는 한국 사상이 있을까? (이전) 철학자 2017.04.01 915
388 나는 왜 유독 몇몇 철학자만 편애하는가 (이전) 철학자 2017.04.01 596
387 컴퓨터와 마음 강의노트 4강 secret 철학자 2017.03.29 384
386 나의 교육철학 (스케치) (이전) 철학자 2017.03.28 127
385 컴퓨터와 마음 강의노트 3강 secret 철학자 2017.03.23 645
384 컴퓨터와 마음 강의노트 2강 secret 철학자 2017.03.13 1010
383 데카르트 [[성찰]] 단상 철학자 2017.03.09 161
382 컴퓨터와 마음 강의노트 1강 철학자 2017.03.07 2122
381 네 인생의 이야기 by 테드 창 (발췌) 철학자 2017.03.01 195
380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by 테드 창 (발췌) 철학자 2017.03.01 113
379 거짓 뉴스 비판의 불편함 (이전) 철학자 2017.03.01 408
378 필연의 어원 (라틴 계열) 철학자 2017.02.23 127
377 인간 번역과 기계 번역 (이전) [1] 철학자 2017.02.22 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