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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서울대학교 교양 ‘컴퓨터와 마음’ 강의노트

 

1강. 강의 개요

 

2016년 봄, 컴퓨터와 인간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이겼죠. 사실상 완승이죠. 1997년 체스에서 컴퓨터가 이겼고, 이제 바둑이 이겼고, 그럼 10년 후엔? 섬뜩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죠. 관련 기사나 책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세돌의 일주일], [바둑으로 읽는 인공지능], [인간 대 기계], [파이널 인벤션] 등.

 

이 과목은 공학이 아닌 철학 과목이라 ‘컴퓨터’보다 ‘마음’에 더 초점을 맞춰왔지만, 알파고 이후로는 약간 방향을 틀기로 했어요. 그 점은 잠시 후에 이야기하겠어요. 철학과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강의를 진행할 때의 장점은 철학이 원리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어요. 철학의 장점은 어떤 사실이 성립하기 위한 바탕, 토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물론 철학만 그런 건 아니지만 과학자들이 잘 다루지 않는 걸 많이 다룬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인공지능이란 기계로 지능을 구현하는 걸 말합니다. 인공지능 연구는 사실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그런데 정작 인간지능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잘 몰라요. 잘 모르면서도 그것을 구현할 수가 있을까요? 공학자들은 이런 질문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인간지능이 인공지능과 본성상 같다고 전제하고서 작업하니까요.

 

알파고를 봐요. 바둑은 경우의 수가 정말 많아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고 하지요. 그렇긴 해도 바둑은 어쨌건 수학 계산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비인간적인 활동이에요. 컴퓨터가 인간이 본래 잘 못하는 계산 대결에서 인간에게 이겼다고 뻐길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충격적일 것도 없어요. 인간보다 컴퓨터가 계산을 더 잘 하는 건 당연해요. 컴퓨터는 ‘계산기’라는 뜻이고, 계산 기능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잖아요. 컴퓨터가 인간보다 잘하는 모든 분야는 컴퓨터가 원리상 더 잘하는 분야일 수밖에 없어요.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알파고 후에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중요한 사건이 있었어요. 첫째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의료 정보를 학습한 후 임상에서 진단과 처방을 내린 일입니다. 둘째는 구글 번역기가 신경망 학습을 통해 상당히 높은 정확도로 언어 간 번역을 해낸 일입니다. 셋째는 포커 게임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챔피언에게 이긴 일입니다. 알파고를 포함해서 이 사례들은 기계학습의 획기적 발전과 관련됩니다. 자세한 건 강의를 진행하면서 살펴보겠지만, 우리가 물어야 할 건 이 사례들에 활용된 기계학습이 계산의 영역에 속하는지 여부입니다. 계산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이라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리라는 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계산과 상관없는 사안이라면 어떨까요? 자연과 사회의 모든 현상은 모두 계산 가능한 걸까요? 인간이 아직은 계산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인간 혼자서는 계산할 수 없지만, 본래는 계산 가능한, 따라서 인공지능이 풀 수 있는 그런 성질을 지니고 있을까요? 이런 물음에 답해야 할 겁니다. 지레짐작해서 답하는 게 아니라 따질 때까지 따지면서 답해야 합니다.

 

수학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인간적인 활동이에요. 자연과학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고요. 자연과학은 인간의 오감으로 다룰 수 없는 세계까지도 탐구합니다. 초음파, 자외선, 전자기파 등은 인간이 보거나 느낄 수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감지하고 적절히 기술하고 이용하는 활동이 과학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과학을 잘하는 건 맞아요. 100년 전의 인간과 비교해도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어요. 인간이 현재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은 자연적이지(natural) 않은, 즉 인공적인(artificial) 일들이에요. 100년 전 사람이 보면 지금 세상은 해리포터의 세계로 보일 겁니다. ‘쿠쿠’가 사람보다 밥도 더 잘 짓지요? 하지만 밥솥이나 세탁기나 알파고나 다 거기서 거기에요. 인공지능은 세 가지 등급으로 구분됩니다. 인간보다 천 배 이상 높은 지능인 초인공지능((artificial super / ultra intelligence), 그보다 조금 낮은 등급인 인간 수준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strong / general intelligence), 한 가지 일을 아주 잘 하는 약인공지능(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이 있는데, 알파고는 약인공지능에 속해요. 그런데 ‘쿠쿠’나 ‘트롬’도 같은 등급에 속합니다. 참고로 현재는 인공지능 연구의 제3기에 해당하는데, 약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는 제2기인 “인공지능의 암흑기”에 많이 발전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얼마나 많은 것을 잘하게 될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인간지능에 대한 중요한 오해 하나를 짚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보통 인간지능의 핵심으로 꼽는 건 추상적 활동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을 잘 하지요. 이런 일은 자연에서 어떤 동물보다도 인간이 탁월하게 해요. 그런 점에서 ‘인공적인 것’의 능력이라고 표현해도 좋아요. 아주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에 여기에 주목해 왔던 건 당연해요. 그런데 감성, 직관 등 조금 신비하고 모호한 용어로 지칭하는 능력도 인간지능의 일부에요. (바둑에서의 감(感)이나 직관도 실제로는 계산 가능한 건데 인간이 잘 몰라서 그런 용어들을 썼다는 반론은 잠시 덮어둘게요.) 아주 흥미로운 건, 인공적인 것의 능력은 인간한테 자연적이라는 점입니다. 자연에서 인간은 유별나게 인공적인 것의 능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 능력을 특화한 것이 컴퓨터지요. 요컨대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의 한 부분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 속에서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알파고는 인간지능의 성취인 거죠.

 

수학과 과학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추상적 활동은 객관적(objective)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객관적’이라는 건 제3자에게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라도 함부로 반박할 수 없어요. 수학과 과학에서 얻은 앎이 자연의 모습 그대로인지 아니면 인간에게 그러하다고 알려진 모습에 불과한지 논쟁이 있습니다만, 지금 강조하고 싶은 건 그런 앎이 자연 안에서 모순 없이 아주 잘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어떤 앎을 얻고 그 앎에 입각해서 어떤 활동을 했을 때 충돌이나 모순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앎은 아주 잘 작동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 앎은 객관적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제멋대로 생각한 것에 불과한 건 아니라는 거죠. 망상일 수도 있지만, 자연의 운행과 맞아떨어지는 상당히 그럴듯한 망상인 셈이지요. 요약해 보죠. 인간지능의 한 부분인 추상적 활동의 능력은 객관화될 수 있고, 인공지능의 형태로 특화되어 발전했으며, 앞으로도 더 발전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인간지능의 다른 부분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지능’의 일부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문제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살필게요. 지금은 마음의 가장 중요한 특성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마음은 객관화되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로봇인지 인간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마음을 갖고 있어야 인간일 텐데,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객관적으로 검증이 안 됩니다.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특성을 ‘주관적(subjective)’이라고 합니다. 1인칭으로만 접근이 가능해요. 누군가가 ‘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입증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란 영원히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인 거죠. 그래서 마음이라는 건 없고 마음이 있다는 건 망상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 주장은 마음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논거에 기대고 있어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것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없다는 건 본래 증명이 어려워요. 증명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행동주의(behaviorism)를 택하는 이들도 있어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고,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즉 자극과 반응의 관계만 봐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만 행동주의의 방법으로 로봇과 인간을 구분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 구분을 애초부터 무시하겠다는 입장이니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적어도 나 자신은 마음이 있다는 확신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 안쪽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바로 옆 사람이 마음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따라서 마음의 탐구는 내성(內省, introspection)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면을 면밀히 살피는 거죠. 물론 그 탐구가 제멋대로일 수 있기 때문에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여다본 걸 열심히 적어놓은 게 있다면 참고할 수는 있겠지요. 오랜 세월 동안 철학자들이 그 일을 해왔고, 그 중에는 탁월한 보고서도 있습니다. 그걸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마음은 뇌에 있기 때문에 뇌를 탐구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뇌는 몸의 일부입니다. 몸의 다른 기관들이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뇌는 신경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뇌가 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뇌를 연구하는 일과 마음을 연구하는 일은 관련은 있지만 동일한 작업은 아닙니다. 뇌 과학을 통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요. 마음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어요. 뇌는 객관적 존재인 반면 마음은 주관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뇌 연구의 현실적 어려움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과 관련됩니다. 이런 걸 철학에서는 ‘원리상(de juri, in principle)’의 문제라고 부릅니다. 마음은 분명 뇌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지만, 마음과 뇌는 원리상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변은 마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심지어 마음이 있는 장소(locus)를 말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마음의 탐구가 철학적 작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게 현재까지의 연구가 이른 한계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인간지능을 기계적으로 구현하겠답시고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인간지능과 똑같은 본성을 지닐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중심주의에 갇힐 필요는 없어요. 인공지능이 탁월한 계산기여도 상관없으니까요. 어쩌면 인간지능을 모델로 하지 않는 편이 인공지능 발전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뛰어넘었다는 말도 삼가야 합니다. 인간지능이 무엇인지,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인간지능을 탁월한 계산기라고 묘사하는 건 비유적으로만 타당합니다. 이제는 그 비유도 버려야 할 때입니다. 솔직하게 인간지능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음의 본성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다면, 즉 객관화할 수 있다면, 프로그램(=알고리듬)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덧붙여야 할 겁니다.

 

지능은 생물학적인 능력이에요. 유인원이나 돌고래나 꿀벌도 지능이 있어요. 인간이 제멋대로 기준을 정해 측정해서 어떤 동물의 지능이 높다 낮다 말하지만, 지능은 종마다 특유해서 서로 비교하는 게 무의미합니다. 종별로 생존을 위해 갖추게 된 능력이어서, 인간의 기준으로 논해서는 안 돼요. 돌고래의 기준에서는 돌고래는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지능이 있어요. 돌고래는 자신의 환경에서 생존할 능력이 있는 데 반해, 인간은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해요. 지능은 생명 진화의 마지막에, 우주 진화의 마지막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입니다. 따라서 지능을 얘기하려면 진화론적 접근을 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인간지능의 특성을 살펴야 합니다. 넓은 의미의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한 거죠. 더욱이 개체가 지닌 지능(individual intelligence) 말고도 집단이 지니는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도 있어요. 집단지능은 꿀벌이나 개미한테서도 확인되지만, 인간에게는 민주주의 같은 제도에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개체지능과 집단지능 둘 중 어느 것과 가까울까요? 이런 것도 물어봐야 할 겁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뛰어난 인공지능과 더 살아갈 시간이 길거에요. 그 속에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새로운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또는 인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봐야 해요. 바로 여러분의 문제니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이 물음을 이 강의의 부제로 삼고 싶어요. 각자의 전공과 상관없이 인간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탐구해 보자는 거죠. 공부란 시험 잘 보는 것과는 달라요. 배운다는 것도 그렇고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그런 것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교재로 오랫동안 사용했던 책 [마음과 자연]의 비중은 줄이고, 최근 이슈와 쟁점이 되는 인공지능에 대한 자료들을 제공할 겁니다. 다음 시간까지 뇌 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강의를 보고 오세요. 각각 알파고 전과 후에 강의한 건데,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차이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1. 뇌,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 https://www.youtube.com/watch?v=tKLRQs_nOxM

2. 카오스 강연 '뇌가 보는 뇌' https://www.youtube.com/watch?v=CqGxWMW55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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