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예술과 문화 사이버스페이스 오디세이아

김재인 2002.01.21 07:51 조회 수 : 5039 추천:155

* 이 글은 <오늘예감> 1997년 여름호에 '나는 지금 거품 스페이스로 간다'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글이다. 그쪽 편집진이 임의로 그렇게 바꿨던 거였고 필자는 유럽에서 돌아온 그해 가을 황망하게 책을 받아볼 수밖에 없었다.


사이버스페이스 오디세이아

맨날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 알고 싶다고 졸라댔지? 다들 '사이버' '사이버' 외쳐대니까 너만 무식해지는 것 같다고. 하지만 사람들도 괜히 알지 못하면서 요란 법석을 떠는 거니까, 겁 먹지 마. 그렇지만 모르다 보면 당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사이버스페이스로 데이트를 가보자. 내가 잘 안내해 줄 수 있을진 모르지만, 믿고 따라와 봐. 네가 혼자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까지는 도와줄 수 있을 테니. 어차피 이 동네는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 그래서 이곳을 잘 보여주는 지도같은 건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을 지배하는 힘들을 냉정하고 침착하게 관찰하는 거야. 그 힘들의 벡터를, 다시 말해 그 힘들의 크기와 그 힘들이 향하는 방향을 놓치지만 않으면 성공일거야.

너, 컴퓨터는 좀 쓸 줄 알지? 음, 다행이야. 얘길 풀어가는 게 좀 쉬워지겠구나. 쉽게 말해서 사이버스페이스란 컴퓨터에 의해 열린 세계야. 이런저런 잡다한 컴퓨터들이 얼키고설키면서 사이버스페이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쉬워. 오래된 도시에 가 보면 수백년 된 거리와 건물들이 어제 갓 지은 거리와 건물들과 뒤얽혀 있잖아. 내가 보기에 사이버스페이스도 그런 오래된 도시와 비슷한 것 같아.(주1)

그런데 컴퓨터 시스템의 기본 요소만 가지고서는 본격적인 사이버스페이스라고 얘기할 수 없어. 기본적인 사양에다가 중요한 몇 가지 요소를 첨가해야 돼. 디지털 자료하고 멀티미디어 장비하고 네트워크가 그거야. 이런 매체의 특징에 대해서는 내가 몇 군데다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걸 보여줄게.(주2) 요즘 사이버스페이스의 대명사격인 인터넷은 실은 확장된 개인 컴퓨터라고 말할 수 있어. '멀티미디어 네트워크 컴퓨터 시스템'인 거야. 지금까지 한 개인은 자기 앞에 있는 입력 장치하고만 만나고 처리는 컴퓨터 안의 처리 장치가 해주었잖아? 이제는 그 처리 장치가 컴퓨터 안에 있는 처리 장치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 또는 다른 사람들의 컴퓨터들로 확장되어 버린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터넷이 유사 유기체로 진화해 가는 중이라는 말을 하기도 해. 각 개인은 독립된 기관(器官)과 같고 인터넷은 그것들이 모여 이룬 유기체라는 거지.

그러니까 사이버스페이스는 우주 공간 같은 그런 '공간'이 아닌 셈이야. 마치 진짜 공간이 있고 따로 사이버 공간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사이버스페이스라고 부르는 그곳은 사실은 현실 세계 속에서 새롭게 열린 어떤 '차원'에 해당하니까 말이야. 전화나 자동차의 발명이 열어 놓게 된 새로운 차원과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차원 말이야. 내가 생각하기에 사이버스페이스의 특징은 결국 '디지털!'이란 말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것 같아. 세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서의 디지털 말이야.

그 '디지털'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볼까. 사이버스페이스는 우리가 컴퓨터를 통해 진입하는 세계야. 컴퓨터가 없으면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이버스페이스에 들어갈 수가 없어. 보통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손으로 만지면서 눈은 모니터를 향하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잖아. 어찌 보면 그게 사이버스페이스와 대면하는 전부라고 할 수도 있어. 그것 이외에 사이버스페이스가 있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몇 시간 동안 사이버스페이스를 여행하고 나서도 우리 몸은 거의 꼼짝 않고 있는 경우도 많은 거야. 우리의 뇌와 눈과 귀와 손가락만 열심히 움직이는 거지. 그래서 사이버스페이스를 한참 돌아다니고 난 다음엔 몸이 이상하게 뻐근하고 영 좋지 않아. 운동 부족인가?

미래에는 사정이 좀 달라질지도 몰라. 입출력 방식이 훨씬 다양해지겠지. 말로 명령할 수도 있고, 눈빛과 시선으로 명령할 수도 있고, 판이나 모니터 위에다 손가락이나 입력 펜으로 그릴 수도 있고, 심지어 뇌파를 따라 명령이 전달될 수도 있겠지. 또 영화나 책에서 보듯이 피부에 꼭 맞는 옷 비슷한 걸 입고 우리 몸 곳곳에 적절한 자극들을 전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특수한 안경과 헤드폰을 통해 더 많은 가상 현실 경험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런데 가끔 의문이 생겨.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런 일이 무한정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떤 정도까지만 일어날 수 있을까? 너에 대한 내 사랑이 디지털 신호로 변환될 수 있을까? 인간이 디지털로 환원될 수 있을까? 인간의 감각과 감정과 생각과 느낌이 디지털로 환원될 수 있을까?(주3)

그렇다고 내가 디지털 차티스트 운동을 주장하는 건 아냐. 단지 디지털 매체의 특성에 대한 성찰이 더 필요하다는 거지. 예를 들어 사이버스페이스에 있는 자료들이 누군가가 디지털화해서 저장해 놓은 자료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잊을 때 우린 함정에 빠지게 돼. 과장된 비유를 들자면, 만약에 니가 소크라테스의 일곱 살 때 사진을 구하고 싶다면 넌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해도 넌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런 건 이미 없는 거거든. 이미 없는 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구하려 한다 해도 찾을 수 없는 노릇 아니겠어. 이런 의미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결코 만능이 아니야.

그럼 구할 수 있는 건 뭐냐고? 이미 누군가가 알고 있는 것이지 뭐. 그리고 그 중에 디지털로 저장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사이버스페이스에는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이 존재하기는 존재하되 디지털 복제본 형태로만 존재하는 거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문서 파일 형식으로, 듀스의 '사랑, 두려움'은 소리 파일 형태로 존재하고.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찾을 수 있는 건 그런 것 뿐이야. 상당히 적은 것 같지? 하지만 양적으로 보면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어떤 개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많아. 그런데도 인터넷이 쓰레기 정보로 가득 차 있고 쓸 만한 정보는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 너무 많은 환상을 갖고 있거나 제대로 그것을 이용할 줄 모르는 바보임에 틀림없어. 그들은 도대체 뭘 원했던 거지? 이 현실 세계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을진대 사이버스페이스가 무슨 별천지라고! 없는 곳에서 뭘 찾으려 하기보다는, 지금 자기 자리에서, 원하는 걸 직접 만드는 편이 나을 거야.

사실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해 부풀려진 얘기가 너무 많아. 거기도 사람이 만들었고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걸 명심해야 해. 언제나 정치꾼들하고 장사꾼들을 조심하라구. 그러니 적게 기대하고 최대한 얻는 게 최선이야. 그건 일종의 싸움이지. 몇 천년 동안 인간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겉보기에만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 빌 게이츠 같은 장사꾼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간을 아주 많이 변화시켜서 아주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장사꾼의 얘기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 그는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어.(주4) 다만 편리하고 힘 안 들이는 것이 잘 사는 데 도움을 주리라는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그 편리함도 대개는 사기라는 게 내 생각이야. 장삿속에서 나온 위장된 편리함 말이야. 게다가 편리함은 인간을 더 게으르게 만들잖아? 그런데 게으르면 삶을 즐길 수 없게 되는 거 아니겠어?

실제를 보자구. 흔히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하잖아? 좋은 것이 무진장 널려 있는 '보물 창고' 같다는 의미에서 그런 비유를 쓴단 말이야. 그런데 그 보물 창고에서 누구나 원하는 대로 보물을 가져갈 수만 있다면야 굳이 장사꾼의 말을 들먹거릴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어디 그런가? 대부분 쓸데없는 정보거나 신용 카드 번호를 입력해야만 가져갈 수 있는 정보거든.(주5) 이미 시장판이란 얘기지. 차라리 '정보 고속도로'라는 표현이 더 나아 보여. 이용료도 낼 만큼 내야하고, 속도도 빠를 땐 빠르지만 느려질 땐 엄청 느려지고, 산과 들도 상당히 훼손시키잖아. 영락없는 고속도로지 뭐야.

그런데 내가 너무 정보 얘기만 했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차원에서 사이버스페이스를 경험해. 예전엔 우리가 직접 만날 수 없을 때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었지만, 이젠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나는 일이 많을 거야. 몸이 아니라 몸의 기호들이 돌아다니며 서로 만나는 거지. 아이디만 가지고 서로 만나 바둑을 두기도 하고 대화를 하기도 하잖아. 자기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신시켜 볼 수도 있고 자기가 가진 장점만을 발휘할 수도 있어. 이런 일 말고도 놀이 삼아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더 있어. 그런데 그냥 놀이라고 생각하면 편한데, 가끔은 좀 무리를 해서 안 좋기도 해. 너도 전자 오락을 하면서 밤새 본 적 있지? 밤새 테트리스를 하고 난 느낌이 어땠어? 막상 할 때는 이상한 마력을 갖고 있지만, 하고 난 후엔 굉장히 허탈하지 않았어? 할 일도 많은데, 완전히 시간만 죽인 것 같았지? 사이버스페이스 경험도 그것과 비슷할 때가 많아. 사실 요즘도 통신 대국을 하느라고 시간을 엄청 뺏겨. 대국 자체야 즐겁지. 하지만 가끔은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가볍게 오락실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지만, 내가 어디 오락실 들락거릴 나이니?(주6)

그리고 '사이버문학'이란 걸 얘기하는 사람들도 좀 불안해 보여. 그게 기존의 문학과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하는 거지. 아까 내가 썼다고 한 글들에서도 그런 얘길 많이 했었거든. 많은 게 바뀌고 달라졌다는 건 나도 분명히 인정한단 말야. 하지만 도대체 달라진 부분은 뭐냐 이거지. 나는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특정 예술 장르에 대한 특권을 인정하지 않거든. 각 예술 장르들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있을 따름이야. 예술 장르의 분화는 단지 매체의 분화에만 의존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색과 형에 대한 강조는 조형 예술의 특성이고, 음에 대한 강조는 음악 예술의 특성이고, 문자에 대한 강조는 문학 예술의 특징이고, 뭐 이런 식으로 분화가 진행되었다는 거지. 각 예술의 예술성 또는 미적 차원은 그런 장르 구분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문학에는 문학성과 예술성이 존재하고, 음악에는 음악성과 예술성이 존재하고, 미술에는 미술성과 예술성이 존재하고, 그런 식이라는 거지. 이런 관점에서 사이버문학 논의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문학 중심주의적인 자리에서 발언되고 있는지가 보여. 디지털 매체의 팽창과 더불어 사이버문학이 탄생했다는 게 사이버문학 논자들의 주된 논리인데, 그 세부적인 특징이야 어찌됐건 간에, 왜 그것이 '문학'이라고 불려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대답되지 못한 것 같아. 그건 차라리 새로운 예술 장르일 거고, 나는 잠정적으로 '사이버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은 거야. 그 '사이버예술'은 아직은 미숙하고 실험적이고 생성중에 있지만 분명히 어떤 예술성과 미적 차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우리가 지금 하기에 달려 있지. 하지만 그건 '문학'은 아닐 거야. 미술이 문학과 구분되듯이 사이버예술도 문학과 구별되는 게 옳겠지. 하지만 아직 내가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탐구해봐야겠어.

사이버스페이스도 결국은 사람 사는 똑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제일 무난할 것 같아. 내가 얼마 전에 유럽 자유 방랑 여행을 떠나려고 생각했을 때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 '세계로 가는 기차'라는 하이텔 동호회였는데 거기서는 새로운 만남들이 가능하더라고. 무척이나 많은 정보들이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선별하고 선택해야 할지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얼마 전이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일들이 일어나고 있더라고. 방 안에 앉아서 전세계로 가는 법을 알 수 있었으니까.(주7) 동아리 방 같은 데서 만나서 책을 들추며 얘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을지 모르지만, 온라인 상에서만큼 생생하고 유용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을까?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세계를 변혁시키는 힘이라고 누군가 말했었는데, 직접 겪어본 사람은 이 말의 힘을 잘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는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뭔가를 주는 그런 곳은 아니야. 그런 곳은 세상에 없겠지. 어디서나 우리는 뭔가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 겨우 찾아낼 수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사이버스페이스에 직면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법을 배우는 일이야.(주8)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건 검열에 대한 싸움이야. 게다가 정치적인 차원에서의 검열은 성적인 차원에서의 검열보다 더 집요하고 강력한 것 같아. 어쩌면 당근과 채찍처럼 이중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 한쪽을 느슨하게 풀어 주면서 다른 한쪽을 조인다 이거지. 결국 정치적인 문제나 사상적인 문제로 가게 되면, 사이버스페이스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 같아.(주9)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 세계의 한 부분일 뿐 결코 현실 세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물론 이 말이 사이버스페이스의 독자성을 무시하자는 얘긴 아니야. 다만 현실 세계의 원리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운용하는 원리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거지. 사이버스페이스에도 여전히 온갖 인간적인 모습들이 난무하고 있거든.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인간은 어디서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아.(주10)




주석:

1) 원래 이 비유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에 대해 말하면서 들었던 것이다. {철학적 탐구} 참조.

2) 필자의 다음 글들을 참고할 것. [사이버문학은 없다]({버전업} 1996년 겨울호), 좌담 [논하다]({버전업} 1997년 봄호), [사이버예술의 도전 - 새로운 예술가를 기다리며](서울시립대학교 교지 {대학문화} 1997년 봄호). 이 글들은 종이 위에서 찾아 볼 수도 있지만, 하이텔 문화담론 연구모임 '이다'(go sg68) 1번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다.

3) 이 문제는 '블레이드러너'나 '엠마누엘 7' 같은 영화 속에서도 제기되었지만 거기서는 휴머니즘적인 상상적 해결에 그치고 있다. 다시 말해 복제 인간 혹은 사이버 섹스에 있어서 '인간의 정체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듯 보이지만, 여기서 열린 새로운 과학적 현실은 다시 보수화되면서 종래의 인간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의 해결만을 향하고 있다. 이제 아기양 돌리의 복제 실험 성공이나 사이버스페이스의 팽창은 위의 예와 같은 영화들이 가정법이 아님을 보여준다. '인간의 정체성'뿐 아니라 '생명과 물질의 동일성'마저도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4) 이 물음이 철학 또는 광의의 인문학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5) 그렇지 않은 정보를 유통시키는 자들이 '사이버 펑크'다. 이들은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 권력에 대한 저항, 인권 보호, 검열 반대, 자율적인 행동을 모토로 삼으면서, 대개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상업적 공간으로 만드는 데 반대하고 있다. '정보의 바다'도 돈 있는 자가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 그래서 이들은 주장한다: 공짜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아주 쓸모 있으면서도 무한 복제가 가능해서 다같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것들은 함께 나눠 갖자! 적어도 공짜로 구한 건 돈 받고 팔지 말자! 이들은 저작권을 뜻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대항해서 '카피레프트(copyleft)' 혹은 '카피롱(copywrong)'을 주창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나 정보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고 인류 전체의 소유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원리에 의해 현실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6) 이 단계가 좀 더 심화되면 소위 '통신 중독증'이라는 것에 걸린다. 통신에 접속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 그러나 통신 중독증이 심화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심적 몸적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징후로 여겨져야 한다.

7) … 그리고 이 글이 나올 즈음 필자는 유럽을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8) 웹진 im@ge 편집장 김길현과 와이어드의 편집장 케빈 켈리가 나눈 인터넷 대담에서 케빈 켈리가 한 말이다. 그는 또 사이버스페이스는 실제 세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밝히고 있다. 다음을 참조하면 좋다. http://www.iWorld.net/im@ge/ 최근에 문화 무크지를 낸 {이다}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9) 이 문제와 관련해 신진욱, [계급 형성의 객관적 장애로서의 상징 권력], 문화무크지 {이다} 제2호, 문학과지성사, 1997 참조.

10) 이 글을 쓰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직간접적인 도움이 있었다. 아래에 몇몇 이름을 열거하고 싶다: 김길현, 김소연, 김재원, 김진석, 변정수, 서수진, 이관수, 이용욱, 이유남, 이태직, 임성희, 전사섭, 정과리, 주일우, 케빈 켈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