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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철학강의 0. 연재를 시작하며

김재인 2002.01.23 07:09 조회 수 : 4791 추천:84

* 이 글은 '문학과지성사(http://moonji.com)'의 '문화마당'에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문학과지성사의 홈페이지에 실은 뒤 시간 간격을 두고 이곳에 그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글이 보고싶은 분은 직접 가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김재인이 쓰는 '이 기쁜 철학'

0.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꽤 오래전부터 우리말로 된 철학 입문서를 쓰고 싶었다. 삶의 문제가 생각을 통해 다 해결되지도 않고 다 해결될 수도 없지만 생각은 분명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생각의 학문 그것이 곧 철학일진대, 한국에서는 공공 교육의 장에서 철학을 학습할 수가 없다. 더구나 실용성,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실용성만이 배타적으로 추구되는 오늘의 사회 분위기에서 철학이라면 왠지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철학 또는 인문학을 비실용적이라고 판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철학은 전체적으로 볼 때는 삶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나는 앞으로 구체적인 맥락을 통해 이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

철학은 도덕도 국민윤리도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삶을 노예로 만들려는 모든 힘에 대항해서 싸우는 생각의 실천이다. 철학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우리가 생각을 하는 모든 순간과 관련을 맺는다. 생각이란 호흡과 비슷한 활동이다. 우리가 숨쉬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듯이 생각함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많은 경우 설사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확실히 그것은 진실이다. 또한 생각에는 저열한 것과 고귀한 것이 구분된다. 철학이란 우리가 저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다.

생각은 언어 또는 개념을 통해 정돈된다. 정리나 정돈이라고 하면 강요된 질서의 뉘앙스가 풍기는데, 이것은 우리가 겪은 현실이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착시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정돈은 생각의 종착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정류장 정도는 된다. 다시 말해 생각은 최후의 안식처에서 쉬려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중간에 휴식 정도는 필요하다. 개념이란 그러한 휴식을 위한 장소이다.

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한국어 개념들을 좀 정돈하고 싶었다. 언어를 다듬고 창조하는 사람은 많다. 무엇보다도 시인이 그러할 것이며 미술가 또한 언어를 풍요롭게 만든다. 이런 와중에 내가 표준 개념 사전을 만들어 모두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시도는 애초부터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좀 차분하게 기초적인 한국어의 중요한 쓰임새를 정돈하고 싶었을 뿐이다. 징검다리로서. 이렇게 되면 거의 개인어 사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어일지라도 한국어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는 역으로 말해 한국어라는 것이 이와 같은 개인어의 이질적인 혼합물 이상도 아닐 것이다.

생각이 뒤죽박죽이라는 것의 징표인 개인적인 언어 혼란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노예는 스스로 생각을 정돈하지 못하는 자가 아닐까. 그러니까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 말이다.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가만히 있으면 노예가 되는 것이 삶의 냉혹한 진실이다. 역사는 진보했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공짜로 선물이 주어진 적은 없다. 공짜 선물은 노예로 만드는 미끼에 불과하다.

생각에 관심이 많고 그러다가 철학을 '전공'까지 하게 되다 보니 외국 여러 나라의 개념들을 꽤 접하게 되었다.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은 저들이 자신의 언어를 정돈하기 위해 각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사실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노력은 아주 단발적이고 미약했다. 그래서 더더욱 철학 입문서를 쓰고 싶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재료는 여러 지역에서 왔다. 그러나 출신 지역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실상 '우리 것'은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전수된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여기 주어진 것 그것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아가 재료가 아무리 좋더라도 완성품은 재료의 차원을 넘어선다. 물론 그 넘어섬의 방향은 좋은 쪽일 수도 있고 나쁜 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것은 무엇보다 열등감이다. 맹목적으로 '우리 것'을 강조하는 태도에는 보통은 자부심보다는 열등감이 더 많이 배어 있다. 현실에서의 패배 또는 뒤처짐이 일종의 반발 의식을 형성해서 국수주의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에는 저작권이 없다. 좋고 적합한 것이기만 하다면 떳떳하게 “이거 일제야!” “이거 미제야!”라고 외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들 뭐 어떠랴. 생각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나인데! 그건 이미 체화된 나의 생각이 아니던가. 그러면 충분하지 않은가.

삶의 조건이 변하고 있으니 이제 철학은 별 소용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철학은 특수한 영역에 제한되는 학문 또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 자체와 동의어인 생각 활동과 관련된 학문이다. 실패한 연애, 친구와의 다툼, 사업의 어려움, 성적 저하, 부모의 죽음, 현실의 불만 등 우리의 삶은 생각을 동반한다. 우리는 느끼고 따지고 결심한다. 이 모든 것이 다 생각 활동이다. 당연히 철학은 이 모든 것들과 관계한다.

예민한 독자는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종종 “생각 활동”이라는 말을 썼다. 생각은 활동이고, 그것은 달리기나 던지기 또는 계산하기나 먹고 싸기와 같은 몸의 활동이다. 물론 생각의 독자성이 있기는 하다. 이 독자성은 따로 충분히 다룰만한 생각거리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가장 나쁘다. 생각을 무슨 그림자나 허깨비 취급하고, 행동의 준비 단계나 도구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이 오래된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다. 생각은 정말 위대한 실천 활동이고, 생각은 자신과 세계를 바꾸는 힘일 뿐 아니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다.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힘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길러진 것이다. 생각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성숙해야 하고, 무지에서 오는 순진함은 찬양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과 앎은 기쁜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만들어내야만 존재한다. 이러한 실천이 철학의 깊은 의미이다. 함께 “이 기쁜 철학!”을 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