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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삶이라는 것이 어차피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요, 이는 결국 시간의 경제라는 문제를 내포할 수밖에 없겠는데, 조금 친절하게 말하자면, 사는 동안 (즉, 죽기 전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에 있다는 말이다. 만약 그 시간이 분산되어 집중(intensity)의 계기를 갖지 못한다면, 삶은 흐물흐물 용해될 것이요, 반대로 집중의 계기를 만들어 매진한다면, 삶은 거침 없이 하이킥 하리라. 이처럼 처음부터 삶의 경제학이 문제의 핵심인 (또는 핵심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분산을 조장하는 모든 것은 나쁘다. 핵심을 우회하게 만드는 모든 술책은 다 나쁘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잘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혹시, 핵심을 비켜가도록 하고 있지 않은가요, 당신 또는 당신의 학파가?

 

  클라이스트(H. Kleist)의 '미하엘 콜하스'를 보면 집중의 계기가 잘 드러난다. 그는 그것을, 그리고 오직 그것만을, 선택했다. 달리 여지가 없었으리라... 순간, 그는 전쟁 기계가 되었다. 전쟁 기계란 항상 그 적(敵)과 함께 등장하기 마련인데, 그 적은 흐름을 봉쇄하려는 힘이기 마련이다. 삶의 흐름은 집중일진대, 그 흐름을 막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거기에 맞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것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클라이스트야말로 전쟁 기계이다. 왜 하필 그 이름이냐고, '전쟁 기계'냐는 불길한 이름이냐고 묻지 말라.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느끼지 못한다면 반대조차 하지 말라. 사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영역이든 불문하고) 전쟁을 두려워 하겠지만, 지금의 삶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적절한 언어를 찾았건 아니건 간에, (자기가 맞서고 있는 영역에서) 나름의 전쟁 기계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현존(現存)에서 도주하고 싶고, 빠져 나가고 싶은 것이다. 전쟁 기계는 현상(現狀)을 그 적으로 삼으면서 만들어지는, 아니 오히려 현상 때문에 만들 수밖에 없는 필연의 길이다.

 

  누군가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면, 그로서는 성공한 것이요, 당신으로서는 덫에 말려든 것이다. 빠져 나오라. 도주하라.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의 시간을 허송케 하는 그 모든 힘들과 맞서 싸우라. 당신 자신 전쟁 기계가 되어라. 다른 답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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