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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와 철학원

[이정전 칼럼] "대학은 문화센터가 돼야 한다"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7-16 오전 8:57:28

 

 

"대학교 철학과는 자꾸 줄어드는데, 길거리 철학원은 계속 늘고 있다." 인문학 위기를 걱정하는 어떤 철학교수의 탄식이다. 왜 철학과는 자꾸 줄어들까? 아마도 요즈음의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 철학교수들은 너무 고상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자님 같은 말씀만 한다. 엄연히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시장의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 대하여 시원하게 얘기해주는 철학교수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왜 철학원은 늘어나고 있을까? 혼사, 입시, 출세 등 일상생활의 중대사에 관해서 그럴듯한 조언으로 우리의 답답함을 풀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원의 말은 비과학적이고 엉터리라고? 철학교수와 철학원 점쟁이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옳은 말만 한다는 것이다. 철학교수가 하는 얘기의 거의 대부분은 너무 두루뭉술해서 틀렸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점쟁이의 말도 항상 옳게 되어 있다. 금년 봄에 죽을 운이라고 점쟁이가 예언을 했는데도 겨울까지 살아 있으면, 여분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한다. 대학에 틀림없이 합격한다고 단언했는데 떨어졌다면, 복채가 부족해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리고 복채가 부족했다는 것은 정성이 부족했다는 뜻이라고 토를 단다. 현실에서는 옳으냐 그르냐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믿을 만 한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철학교수는 옳은 것을 어렵게 얘기하는 반면, 점쟁이는 옳은 것을 그럴듯하게 얘기한다. 그러니까 철학원이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철학교수들은 이런 즉흥적 해설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자꾸 없어지고 인문학 위기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시장의 원리가 대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어느 철학교수는 주장한다. 2009년 한국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문성훈 교수는 "시장에 의한 대학 식민화와 대안적 합리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요컨대, 시장에 의한 대학 식민화가 진행되면서 대학이 시장의 원리에 부응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학 풍토에서 반시장적 가치를 유포하는 철학과가 용납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시장은 생산성 및 이윤창출이라는 하나의 가치 아래 모든 것들을 줄 세우기 하는데, 철학과는 다양한 가치의 자유로운 추구를 웨치고 있다. 시장은 확고한 경영권을 내세워 경영지침에 대한 절대복종을 요구하는데, 철학과는 민주적 대화(철학교수의 표현으로는 담론)를 통한 다양한 가치의 조화를 떠들고 있다.

문 교수의 지적대로 그 동안 우리의 업계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의 조성을 끊임없이 요구해왔고 대학에 대해서도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재의 양성을 닦달해 왔다. 여기에 보수언론들은 업계의 충실한 확성기 노릇을 하였다. 요즈음 대학가에서는 CEO총장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이 한결같이 내세우는 것도 시장질서에 잘 순응하는 인적자원개발이다. 인적자원개발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간주하는 개념이요 돈벌이의 수단으로 왜소화시키는 개념이다. 게다가 대통령마저 CEO출신이다 보니 업계의 요구나 CEO총장의 주장에 더욱 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에 일부 교수들이 맞장구치면서 "산업계에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이 시대정신인양 강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얼마 전 보수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재벌총수는 대학을 싹 갈아엎겠다는 폭탄선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대학이 구청문화센터냐?"가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다. 요컨대 기업이 현장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간을 대학이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재벌총수는 앞으로 공과대학에서도 회계를 가르치게 하겠다고 별렀다. 대학이 돈벌이 기계(인재)를 양산하는 곳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이나 대학이나 투입한 자원에 비해서 가장 큰 '효과'를 내야하는 경영의 측면에서 같다는 이 재벌총수의 말은 기업과 대학을 혼동하는 발언이다. 기업에서는 효과를 측정하는 잣대가 하나뿐이다. 생산성 내지는 이윤이다. 대학에 대해서도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대학의 속성은 열린 대화를 통해서 다양한 가치를 다룬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곳인데 어떤 잣대로 효과를 측정할 것인가.

▲ 대학이 전적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장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두산그룹 회장)의 인터뷰가 <조선일보>에 실려 큰 파문이 일었다. ⓒ프레시안


과연 대학이 돈벌이 인재를 양산하는 곳이 되어야 하는가? CEO총장이 원하는 대로 돈벌이 인재가 양산되면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살기 좋게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설령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된다고 한들, 빈부격차가 오히려 늘어난다면 돈벌이 인재를 양산하는 의미가 반감한다. 단순히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학은 단순히 돈벌이를 잘 하는 인재보다는 더불어 잘 사는 지혜를 갖춘 인재를 양산하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은 오직 돈만 생각하는 일차원적(one-dimensional) 인간이 아니라 남도 생각하고 사회도 생각하고 인류도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고 인문·사회과학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학이 시장의 질서를 배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으면서 시장의 원리를 외면할 수야 없지 않은가. 기업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도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그래서는 곤란하다. 시장의 원리에 어떤 문제가 있고 신자유주의가 왜 문제인지를 가르치는 대학도 있어야 한다. 비록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더라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초 소양은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돈벌이 인재를 양산하려는 의도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우리 국민의 소득수준을 높이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어서 무얼 하겠다는 것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행복이다. 아마도 CEO총장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면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는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불 내지 2만불대를 넘어선 다음부터는 소득수준의 향상이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밝혀낸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학이 계속 돈벌이 인재만 양산해야 하는가?

우리 각자의 행복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 대학교육 역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인가? 우리를 앞서간 선진국의 오랜 경험은 가정 화목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많이 가지며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화목한 가정과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는 자질 그리고 보람 있는 일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교육이 진정 행복을 위한 교육이다.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가족관계와 인간관계는 엉망이면서 돈 잘 벌고 출세하는 사람은 행복하기 어렵다.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교육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문화에 대한 교육이다. 즉, 문학, 미술, 음악, 역사, 철학, 사회 등 문화에 직결된 것들을 풍부하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수많은 세월에 걸쳐 전승되어온 문화는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하며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하는 원천이다. 문화는 즐거움과 보람을 주는 창조적 자극의 무진장한 보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나 이 보고를 이용할 수는 없다. 상당히 긴 세월에 걸쳐 이 보고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높은 수준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려면 어느 정도의 높은 지적 수준과 교육수준을 필요로 한다. 문화재를 관람할 때 관광 안내원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아주 옳은 말이다. 한 나라의 문화재를 관람할 때에도 그 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있으면 훨씬 더 즐겁게 구경할 수 있다. 학술활동이 무척 보람 있는 활동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특히 젊은이들은 대부분 학술활동이나 높은 수준의 예술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교육을 아직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여가나 자유시간을 건전하게 즐기는 기술을 갖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폭력, 성행위, 강간, 마약 등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인문·사회과학과 예술을 포함한 문화교육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바람직한 즐거움과 보람의 원천을 익히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저명한 학자는 생산기술과 생활기술을 구분하였다. 생산기술이란 돈을 벌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기술이고 생활기술이란 즐겁고 보람된 삶을 가꾸어나가는 기술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회에서는 생산기술보다는 생활기술이 행복에 더 많이 기여한다. 문화교육은 생활기술을 제공하는 교육이다. 이 학자에 의하면, 지난 반세기 자본주의 선진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 주된 이유는 선진국 국민들이 너무 생산기술을 중요시하고 사회제도 역시 여기에 맞추어진 나머지 생활기술을 등한시한 탓이다. 그러므로 이제 자본주의 선진국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교육을 대폭 강화해서 국민으로 하여금 생활기술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문화교육은 자본주의 선진국 사회에 만연한 각종 폭력과 범죄, 마약, 우울증, 자살 등 반사회적 활동이나 사회적 비리를 억제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재벌총수가 "대학이 구청문화센터냐?"라고 질타했다지만, 우리 모두가 진정 행복한 사회를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대학은 문화센터가 되어야 한다. "자동차 시대에 대학은 여전히 마차"를 가르치고 있다고 이 재벌총수가 혀를 찼다지만, 대학은 자동차도 가르치고 마차도 가르쳐야 한다. 사실, 고도성장과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시속 200km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왔다. 시속 200km로 달려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 모두들 남 돌아볼 틈도 없이 그저 돈만 보고 시속 200km로 달려오다 보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양극화사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 인생살이에서는 마차의 속도도 너무 빠르다. 주변의 아름다운 것과 신비로운 것들을 빠짐없이 보기 위해서는 소달구지의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 자신도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되짚어보고, 우리 사회의 돌아감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소달구지 속도로 움직이면서 우리의 삶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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