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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철학과 삶의 의미

철학자 2009.06.29 04:10 조회 수 : 9324

* 서울여자대학교 '현대철학의 흐름'(2009년 1학기) 답안 중에서, 세 학생의 글을 소개한다. 수업을 통해 철학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A 학생(사학과 2005학번)

 

  철학 수업, 굉장히 어려웠다. 답안에도 드러나겠지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학기, 철학수업을 굳이 수강한 이유는 사회에 나가기에 앞서 일관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심에서였다. 자기 주관 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찼지만, 사회에 나간 내가 저들과 같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음에 섬뜩했다.

  강의계획서에서 유난히 '실천'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었다. 내가 참 어려워하는 것이었다. 인식하고, 의식하고, 실천하는 이 흐름이 항상 실천 앞에서 주저하게 되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이것 저것 걸리는 게 많고, 확실하지도 않은데 몸이 앞서면 경솔한 것도 같고 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에 오고 간 이야기들 중에서도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의 도주를 위해 창조의 분투 과정에 있는 물고기가 그렇게도 위대해 보였으며, 배가 단지는 먹어봐야 안다는 마오쩌둥의 이야기가 나를 때렸다.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을 통해 나는 실천의 범위를 좀 더 넓힐 수 있었으며, 들뢰즈를 통해 실천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자기 스스로가 바닥이 되어 가며 행하는 실험, 즉 실천은 일단 실천이 있고 나서야 뭔가 생겨난다는 점, 그 동안 내가 고작 관광을 하려고 그렇게도 주춤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렇다, 철학은 나에게 채찍이 되었다. 옳다 생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고, 그 원칙에서 어긋나려 할 때마다 나를 달리게 하는 채찍. 신중하다는 포장으로 주춤하고 이것저것 따지고 있는 나를 밀어주는 힘, 철학은 나에게 그런 채찍이 되었다.

 

 

  B 학생(공예학과 2008학번)

 

  질 들뢰즈라는 철학자를 이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알게 됐다. 그가 말했던 '삶을 포근하게 살려면 철학은 필요 없다. 다르게 사는 것을 핵심에 두고 있다.' 이 문구가 내 삶의 경로를 바꾸어놓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접때 봤던 어류의 상륙작전과 천마의 제국 비디오 감상이 생각이 난다. 나는 그동안 돌진과 도망 중에 힘든 일은 무조건 제처두고 피하고 변명하고 군색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break-theough를 해서 돌진을 하고, 나만의 도주선을 잘 개척하여 길을 만들고, 창조적인 실천적 발상 전환을 많이 하게끔 바뀌었다.

  들뢰즈가 강조했던 nomade의 강인한 정신을 찾아 보고 몸소 느낄 수 있었고, 생각을 많이 해야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았다. 어떻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를 많이 연구할 수 있었다.

  철학은 내 삶에 있어서 잘못되고 나태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가볍고 장난스러움을 떠나서 내 삶을 진지하게,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C 학생(영어영문 2004학번)

 

  철학이라는 것은 생활과 동떨어진 채,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현실과는 '무관한' 순수한 의식 세계를 논의하는 닫혀 있는 학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니체의 선악 개념, 민주주의 비판은 내가 지금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가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점에서 내 삶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민주주의 비판은 '사회'와도 관련이 있다. 그 비판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허울뿐이며, 본래 가치 실현을 위한 재논의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 준다.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이냐?'의 문제는 현대 철학자, 혹은 철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탐구하게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철학은 보편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적용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은 그 사회가 어떤 지향을 갖고 있든, 구성하는 인간이 어떤 모습을 하건 누구나의 삶과 직결된 질문을 던지기에 평등하고 보편적이다. (정치학, 경제학은 그 사회 구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도 하니까요.) 철학은 사람이든 사회 제도든 본래의 가치가 무엇인지 정의 내림으로써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고, 때로 그 의미가 제대로 구현되어 가는지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처럼 철학은 보편적이며 평등하기에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철학적 논의의 방향은 개방적이기에 어떤 학문으로도 유동적으로 발전 가능하다.

  이것이 내가 느낀 철학의 모습이라면, 수업 전(지금도 다소 그렇지만) 나는 정반대로 철학에 대한 편견을 가졌다. 현실과 무관한 철학책은 현실과 무관한 언어적 수사의 나열이고, 철학의 세계는 폐쇄적이이며, 일반인에게 고민의 기회가 아닌 훈수를 두려는 권위적인 영역으로 인식했다. 철학은 본질과 달리 철학자들 책의 어려운 용어로 그런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철학 하면 현실과는 무관한 영역이라 인식하는 것은 철학의 사회적 위치를 돌아보게 만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소외되는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철학은 인간 소외가 거듭될수록 그 학문의 위상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철학이 인문학의 위기만을 논하며 상아탑이라는 순수한 영역에서 자신만의 순결만 지키려 하지 않았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내가 수업을 통해 철학적 사고 속에서 삶과 현실세계의 위치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듯이, 다수 대중도 주체적으로 철학자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보다 쉬운 이야기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의 개방성'이 현실 속에서도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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