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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일정:
2009년 5월 29일 오전 6시 20분 경 아내와 승용차로 서울 마포 집 출발 - 진영 공설운동장에 도착하여 오전 11시 20분 경 봉화마을회관 행 셔틀버스 승차 - 마을 입구 도착 후 도보로 마을회관에 가서 후 헌화 묵념 - 오후 12시 50분 경 진영 공설운동장 도착 후 서울로 출발 - 오후 6시 20분 경 마포 도착. (빈소에서 식사는 하지 않음.)

준비물:
간단한 간식거리와 물, 담배, 그리고 디지털 사진기.

에피소드:
1. 사진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까닭은 봉하마을이 너무 작고 아무 것도 없어서 찍을 거리가 없었기 때문. 깡촌도 이런 깡촌이 없음. 서울이나 대도시 또는 이른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상상이 잘 안 갈 것임.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네이버 지도를 통해 그 규모를 측정해 보았는데,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노무현대통령생가까지 거리는 200여미터인데, 서울광장을 가로지르는 거리는 150여미터. 아래 첨부한 그림을 통해 비교해 보면 시각적으로 인상이 팍 올 것임(위가 봉하마을, 아래가 서울시청 앞). 시설의 다과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 넓이의 작고 작음이여. 고인에 따르면 마을 전체를 산책하는 데 자신의 걸음으로, 즉 노인의 걸음으로 1시간이 걸린다고 함. 나는 내 걸음으로 코엑스를 다 도는 데도 최소 그 정도는 걸림.

 
<위가 봉하마을, 아래가 서울시청. 일부러 척도를 50m로 통일했음. 왼쪽 위 삼거리가 마을 입구>


2. 분향소에는 여러 줄로 사람들이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옆쪽을 보니 긴 줄이 늘어서 있어 뭔가 하고 살펴보니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었음. 결국 이런 식으로 설렁탕 한 그릇씩 제공하는가 싶었음. 설렁탕 고파 떼 쓰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랄까...

3. 여전히 하이에나 떼가 들끓고 있었음. 이번엔 노비어천가를 지어내는 PRESS 완장들. 곳곳에 '한겨레'라는 하이에나의 오늘자 찌라시 뭉치가가 수북히 쌓여 뒹굴고 있었는데, 이 틈에 마케팅 참 잘 하누나 싶었음. 비열하고도 치욕을 모르는 낯. 아내와 서울에 가면 당장 끊기로 함. 제2창간운동 할 때 납부한 주식대금 돌리도.

4. 방명록에 간단히 "반드시 응징하리라"는 문구와 서명만 남김.

5. 마을을 나오는 길 오른편에 작은 개천이 있는데, 동네 어느 할매가 미나리를 뜯고 있는 모습이 보였음. 그 인파와는 상관없이 하루 끼니에 충실한 그 모습이랄까, 이런 마을에 이게 어인 변고일까 생각하는 것 같았음. 봉하마을이 생긴 이래 이곳을 다녀간 모든 사람보다 최근 나흘 동안 다녀간 사람이 더 많았을 듯.


기타:
토요일부터 어제 월요일까지는 생업 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는데, 오늘 대학강의를 휴강하고 새벽에 일어나 봉하마을로 향했다. 티비도 생전의 사진도 전혀 보지 않았다. 오직 틈틈이 기사만 읽었다. 사실 저 토요일 새벽에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알약과 안경과 지갑 그리고 노무현. 나는 노무현을 거창하게 호명한 적이 없다. 각하 따위의 말은 어림도 없었으며, 노통이나 노짱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 이름 석 자를 통해 가장 많이 표현했던 것 같다. 평생 청문회 때의 그 생생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폭탄처럼 던졌다. 이제 굳이 호칭을 붙이자면 '의사 노무현'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지만, 철학자였다고 해도 상관이 없으리라. 동시에 나는 대인기피증 비슷한 상태에서 멍하게 지내고 있다. 내가 많났던 사람들 중에 그에 대해 말하지 않은 사람은 또 얼마나 있었겠는가. 비 내리던 목요일,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려온 산울림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가 모든 것의 징조처럼 느껴진다.

아내는 방명록에, 너무 슬퍼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라는 문구를 서명 없이 남겼다. 토요일 이후 줄곧 눈물을 보였다. 우리가 노무현을 직접 본 것은 민주당 후보경선 결선 때 잠실에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것도 멀찍이서.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봉하마을로 향했던 것이다.

부엉이바위에서 마을 전체가 보인다는 말이 상상이 가는가? 봉화마을은 이 글을 읽을 그 누구건 그가 다닌 초등학교보다 많이 크지 않다. 옥상에 가면 학교 전경을 볼 수 있듯이, 부엉이바위에서 마을 전체가 보인다는 말이다. 그 어느 대학교만큼 큰 것도 아니다. 노무현은 이곳에서 겉으론 깨끗한 척하면서 뒷구멍으로 온갖 부정을 저지른 후, 수많은 비루한 측근과 피붙이와 이웃에 둘러싸여, 초호화 궁궐을 짓고 일 년 남짓 살다가, 마지막으로 이름 한 번 더 날려보려고 그로테스크하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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