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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인공지능 담론과 생각 착취

 

내가 인공지능 담론과 관련해서 가장 중시하는 요소는 시간이다. 인간에게 시간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생각하고 논의할 시간도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논의 가능한 주제들 중에서 중요한 순서대로 비율을 나누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내가 비판하는 논자들은 시급함의 층을 혼동하고 있거나 혼동시키는 이들이다.

 

나는 우선 약인공지능(특화된 인공지능, 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본다. 약인공지능은 계산, 데이터 분석, 최적화 같은 한 가지 문제를 푸는 데 특화된 인공지능으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곳에서 이미 엄청난 연구를 진행했고 실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를 놀라게 한 알파고, 구글번역, 음성인식, 내비게이션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구글에서 검색한 결과에 개인별 광고가 덧붙거나 아마존에서 도서를 검색하면 추천 도서가 함께 뜨고 넷플릭스에서 추천 영화가 제시되는 것 등이 현재 접할 수 있는 상업 서비스의 실례이다. 약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기에 일거리와 일자리, 교육과 경제체제 전반에 걸친 변혁이 시급하다. 특히 약인공지능은 자본주의 체제에 위협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원리는 이윤 증가이다. 규제가 없으면 대기업이 떡볶이 장사까지 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할 몫을 저임금의 형태로 남겨뒀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자본이 냉정하게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을 통해 가능한 모든 것을 싹쓸이하는 무서운 상황이 올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라는 역설적인 상황도 예상된다. 일거리와 일자리 감소로 실업자가 늘어나면 구매력이 떨어진다. 소수 독과점 기업을 제외한 기업과 구매자들이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구매력 감소는 이윤 감소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따라서 보편적 기본소득이 제안될 건 분명한데,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만일 기업이 주도할 경우, 사람들은 가까스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소득만을 얻게 될 것이고, 대다수의 삶은 계속 비참한 수준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정부(유권자의 뜻을 존중하는)가 주도하면, 약인공지능이 창출한 부와 편의를 대다수가 누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의 결말 부분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내가 그 다음으로 시급하다고 보는 것은 네트워크 인공지능(network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아직 개념으로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기에 내가 정립하려 하는 개념인데, 약인공지능들과 인간들이 결합해서 형성되는 일종의 강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범용인공지능, 일반인공지능)을 가리킨다. 네트워크 인공지능은 훨씬 폭발력이 큰데 인공지능에게 잘못된 데이터를 학습시키거나 정치경제적 목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파괴하거나 테러를 가할 수 있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가 약인공지능들을 경제적, 정치적 의도를 갖고 통합해서 활용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아니 이런 일은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로선 실현 불가능한 강인공지능보다 인간의 탐욕과 과실이 개입되는 네트워크 인공지능이 사회에 훨씬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치적, 법적 수준의 논의가 절실하지만, 실제로 이에 대한 논의는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강인공지능에 대한 담론을 일종의 생각 착취라고 부르고 싶다. 약인공지능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생각할 시간의 일부를 분산시켜 강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에 쏟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이 절박하냐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서 생겨난 일이라고 본다. 내가 강인공지능 논의들을 허무맹랑하다고 보기보다는 한가하다고 보는 이유도 그것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인적 역량도 크지 않고 그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논의 시간 총량도 많지 않다. 인공지능 담론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내가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를 쓴 이유도, 강연과 토론을 통해 담론에 개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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