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라캉과 주체의 사라짐

철학자 2017.06.22 13:42 조회 수 : 378

라캉의 다음 문장을 어떻게 옮겨야 할까?

 

“Nous pouvons le localiser dans notre schéma des mécanismes originels de l’aliénation, ce Vorstellungsrepräsentanz, dans ce premier couplage signifiant qui nous permet de concevoir que le sujet apparaît d'abord dans l'Autre, en tant que le premier signifiant, le signifiant unaire, surgit au champ de l'Autre, et qu’il représente le sujet, pour un autre signifiant, lequel autre signifiant a pour effet l’aphanisis du sujet. D'où, division du sujet — lorsque le sujet apparaît quelque part comme sens, ailleurs il se manifeste comme fading, comme disparition. Il y a donc, si l’on peut dire, affaire de vie et de mort entre le signifiant unaire, et le sujet en tant que signifiant binaire, cause de sa disparition. Le Vorstellungsrepräsentanz, c’est le signifiant binaire.”(Jacques Lacan, Les Quatre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 1964, Seminaire XI, Seuil, 1973, p. 199)

 

Alan Sheridan은 이렇게 영어로 옮겼다(1977). “We can locate this Vorstellungsrepräsentanz in our schema of the original mechanisms of alienation in that first signifying coupling that enables us to conceive that the subject appears first in the Other, in so far as the first signifier, the unary signifier, emerges in the field of the Other and represents the subject for another signifier, which other signifier has as its effect the aphanisis of the subject. Hence the division of the subject — when the subject appears somewhere as meaning, he is manifested elsewhere as ‘fading’, as disappearance. There is, then, one might say, a matter of life and death between the unary signifier and the subject, qua binary signifier, cause of his disappearance. The Vorstellungsrepäsentanz is the binary signifier.”(p. 218)

 

맹정현&이수련은 이렇게 옮겼다(2008). “우리는 이 Vorstellungsrepäsentanz를 소외의 본원적 메커니즘에 대한 제 도식 속에, 즉 주체가 무엇보다 타자 속에서 등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시니피앙의 첫번째 짝짓기 속에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최초의 시니피앙, 즉 단항적 시니피앙이 타자의 장에 출현하며 그 시니피앙이 다른 시니피앙에게 주체를 대표하는 한에서 그렇습니다. 이때 이 다른 시니피앙은 주체의 ‘아파니시스’라는 효과를 갖습니다. 바로 거기서 주체의 분열이라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즉 주체가 한쪽에서 의미로서 나타난다면 다른 쪽에서는 '페이딩', 즉 사라짐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따라서 단항적 시니피앙과, 주체 자신의 사라짐의 원인인 이항적 시니피앙으로서의 주체 사이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걸려 있지요. Vorstellungsrepäsentanz란 바로 이 이항적 시니피앙을 말하는 것입니다.”(p. 330)

 

이를 최원(2016)은 <라캉 또는 알튀세르>에서 이렇게 옮겼다. “우리는 Vorstellungsrepäsentanz를 소외의 본원적 메커니즘에 대한 제 도식 속에, 즉 주체가 무엇보다 대타자 속에서 등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기표의 첫 번째 짝짓기 속에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최초의 기표, 즉 단항적 기표가 대타자의 장에 출현하며 그 기표가 다른 기표에게 주체를 대표하는 한에서 그렇습니다. 이때 이 다른 기표는 주체의 ‘아파니시스’라는 효과를 갖습니다. 바로 거기서 주체의 분열이라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즉 주체가 한쪽에서 의미로서 나타난다면 다른 쪽에서는 ‘페이딩’, 즉 사라짐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따라서 단항적 기표와, 주체 자신의 사라짐의 원인인 이항적 기표로서의 주체 사이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걸려 있죠. Vorstellungsrepäsentanz란 바로 이 이항적 기표를 말하는 것입니다.”(p. 131)

 

나는 두 구절에 주목한다. 우선 “ce premier couplage signifiant”라는 표현. Sheridan은 “that first signifying coupling”이라고 정확하게 옮긴 반면, 맹정현&이수련은 “시니피앙의 첫번째 짝짓기”로, 최원은 “기표의 첫 번째 짝짓기”로 옮겼다. 나는 이 구절에서 signifiant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 signifier의 현재분사라고 보며, 이 점에서 Sheridan의 번역이 옳다. 한국어로는 “이 첫 번째 의미화 짝짓기” 정도로 옮기면 무난하지 않을까 한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구절로, 끝에서 두 번째 문장을 보자. “Il y a donc, si l’on peut dire, affaire de vie et de mort entre le signifiant unaire, et le sujet en tant que signifiant binaire, cause de sa disparition.” 영어로는 이렇게 옮겨 있다. “There is, then, one might say, a matter of life and death between the unary signifier and the subject, qua binary signifier, cause of his disappearance.” 나는 “cause de sa disparition”을 “cause of his disappearance”로 옮겼다는 데 주목한다. 왜냐하면 원문의 sa는 “his”라는 번역어로 확정한 “the subject”뿐 아니라 “the unary signifier”도 가리킬 수 있기 때문이다. Sheridan은 자신의 해석을 경유해 확신에 차 번역했다. 한국어 번역들은 Sheridan과 마찬가지로 “주체 자신의 사라짐의 원인”으로 옮겼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는데”에 해당하는 번역은 빠뜨렸고, “걸려 있다”는 강한 의역을 덧붙였다.

 

나는 대충 다음과 같이 옮기고 싶다.

“우리는 이 Vorstellungsrepäsentanz를 소외의 본원적 메커니즘들에 대한 우리의 도식 속에, 즉 주체가 무엇보다 대타자 속에 나타난다는 걸 우리가 착상할 수 있게 해주는 저 일차적인 의미화 짝짓기 속에 위치시킬 수 있는데, 이는 최초의 기표, 즉 단항 기표가 대타자의 장에 등장하는 한에서, 그리고 그 [단항] 기표가 주체를 대표하는 한에서 그러하며, [이렇게 주체를 대리하는 건] 다른 [이항] 기표를 위해 그러는 것이고, 이때 이 다른 [이항] 기표는 주체의 ‘아파니시스’를 결과로 갖습니다. 이로부터 주체의 분열이 유래합니다. 즉 주체가 한쪽에서 의미로서 나타날 때 주체는 다른 쪽에서는 자신을 ‘페이딩’, 즉 사라짐으로서 현시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는데, 단항 기표와 이 [단항 기표의] 사라짐의 원인인 이항 기표로서의 주체 사이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Vorstellungsrepäsentanz가 바로 이항 기표입니다.”

 

여기에서 라캉이 말하려는 바를 따라가 보자. 라캉은 프로이트의 Vorstellungsrepäsentanz 개념이 행하는 역할을 밝히려고 하는데, 이는 “억압(refoulement)”(p. 197) 또는 “원초적 억압(Urverdrängung)”(p. 199)의 문제와 관련된다. Vorstellungsrepäsentanz는 소외의 본원적 메커니즘들에 대한 자신의 도식에서 “이항 기표”가 행하는 것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 그 도식은 “일차적인 의미화 짝짓기”, 즉 언어 세계의 정립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 도식을 통해 주체가 무엇보다 대타자, 즉 언어 속에 나타난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기표가 있고, 두 종류의 주체가 있다. 각각 쌍으로 나타내면 단항 기표 및 이와 관련된 이차적 주체가 그 하나이고, 이항 기표 및 이와 관련된 본래적 의미의 주체가 다른 하나이다. 주체가 의미로서 이항 기표 속에서 나타나면, 사라지는 주체가 살짝 잠깐 자신을 현시하는데 이것이 단항 기표의 주체이다. 이 과정에서 주체의 분열이 일어나는 건 맞지만(하나는 나타나고 하나는 사라지니까), 단항 기표의 주체는 자신의 흔적(trait)을 이항 기표 속에 남겨두며, 이는 이항 기표의 주체를 대리/대표하는 방식으로 그렇다. 그래서 라캉은 해당 세미나를 시작하면서 “나중(nachträglich)”의 문제와 “단일한 자국(einziger Zug, trait unaire)”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p. 19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문살인의 전말 (김동렬 펌) [5] 철학자 2009.05.24 253143
공지 애도 노무현 [3] 철학자 2009.05.23 285758
공지 He will and should and must be back [5] 철학자 2009.04.18 258913
공지 그 때는 우리가 참 강했다 철학자 2008.02.22 275020
431 한국의 맑스 연구 현황을 개탄함 철학자 2017.07.10 31
430 비정규직 연구자의 시간 철학자 2017.07.09 23
429 스피노자의 '절대의 논리' 철학자 2017.07.05 335
428 스피노자에서 ‘의미의 논리’ 또는 ‘표현의 논리’ [1] 철학자 2017.07.04 282
427 개념(concept)과 붙잡음 [1] 철학자 2017.07.02 685
426 자연에 대한 앎과 신에 대한 앎의 비례 관계 (TPP ch. IV의 한 구절) 철학자 2017.06.29 138
425 스피노자의 singular의 한 용례 철학자 2017.06.29 185
424 스피노자와 존재의 일의성 문제 철학자 2017.06.28 339
» 라캉과 주체의 사라짐 철학자 2017.06.22 378
422 신과 무신론 철학자 2017.06.21 40
421 연구자가 균형감각을 견지하려는 게 옳은 걸까? 철학자 2017.06.21 26
420 이른바 '위장전입' 논란에 대해 철학자 2017.05.28 47
419 Is Matter Conscious? 철학자 2017.05.22 28
418 Scientists Have Observed Epigenetic Memories Being Passed Down For 14 Generations 철학자 2017.05.22 16
417 Neuralink and the Brain’s Magical Future 철학자 2017.05.22 14
416 Philip K. Dick Theorizes The Matrix in 1977, Declares That We Live in “A Computer-Programmed Reality” 철학자 2017.05.22 13
415 What Neuroscience Says about Free Will 철학자 2017.05.22 24
414 The mathematics of mind-time 철학자 2017.05.22 11
413 카카오 AI 리포트. 딥러닝 연구의 현재와 미래 part 1 (스크랩) file 철학자 2017.05.22 51
412 글의 몰락? 철학자 2017.05.22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