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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스피노자는 존재의 일의성 문제를 해결했을까? 우선 아래 구절을 보자.

 

"Dire que l'essence de Dieu est puissance, c'est dire que Dieu produit une infinité de choses, en vertu de cette même puissance par laquelle il existe. Il les produit donc comme il exist. [...] elle [= la substance] n'a pas une puissance absolument infinie d'exsiter sans remplir, par une infinité de choses en une infinité de modes, le pouvoir d'être affecté qui correspond à cette puissance." (SPE 83~84)

 

이 구절을 서동욱은 이렇게 옮긴다. "신의 본질이 역능(puissance)이라는 것은, 신이 실존하는 바로 그 역능 덕택에 신이 사물들을 무한하게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그가 실존하는 대로 사물들을 생산한다.' ... 실체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존 역능에 상응하는 변용 능력을 무한히 많은 사물들을 통해 무한히 많은 양태로 실현하지 않고는 그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존 역능을 갖지 못한다."(<스피노자의 귀환>, 204쪽)

 

이 구절은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비판하고 니체의 영원회귀를 대안으로 내세운 데(DR 59) 대해 서동욱이 실제로 들뢰즈는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존재의 일의성 개념을 완성하기 위해 다른 전략을 취했음을 보이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 다른 전략이란 "스피노자 자체 안에서 실체와 양태 양자 사이의 분리(또는 무관심성)을 해소"(203쪽)하는 것이었다고 서동욱은 주장한다. 위 구절을 인용한 뒤 서동욱은 주장한다. 여기에서 "핵심 개념은 '실존'"인데, "스스로 실존하는 신의 역량은 무한히 변용하는 역량, 즉 양태들의 실존을 생산하는 힘과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과 떼어서 별도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역량을 양태들의 실존과 별도로 생각할 경우 신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존 역능을 갖지 못한다."라고 들뢰즈는 말한다. 요컨대 원인으로서의 원리(실체)의 실존은 생산된 결과(양태)의 실존 없이는 불가능하다."(204쪽)

 

먼저 나는 위의 인용구를 이렇게 옮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신의 본질이 권력이라고 말하는 건, 신이 실존하도록 해 주는 저 똑같은 권력 덕에, 신이 무한히 많은 사물들을 생산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이 사물들을 생산하는 건 신이 실존하는 것과 동시적이다. [...] 실체가 절대적으로 무한한 실존 권력을 갖는 건, 무한히 많은 양태들 속 무한히 많은 사물들을 통해 저 권력에 상응하는 변용 능력(le pouvoir d'être affecté)을 채울 때뿐이다."

 

내가 보기에 이 구절에서 들뢰즈는 여전히 실체의 선차성을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이 나오는 곳은 1부 "실체의 삼항관계"의 5장 "권력"에서이며, 여기에서는 여전히 논의의 실체가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동욱의 논증은 번짓수를 잘못 짚고 있다고 보인다. 이 대목에서 들뢰즈는 실체가 실존할 수 있는 건 실체가 충만하게 변용할 수 있는 한에서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 실체와 양태의 분리를 충분히 해소하고 있지 않다.

 

덧붙일 점: 물론 실체의 변용은 양태들이다. 그러나 이 경우 "변용들(affections)은 필연적으로 능동적인데, 그 까닭은 이 변용들이 적합한 원인으로서의 신의 본성에 의해 자신을 펼치기 때문이며, 신은 [수동적으로] 겪을(pâtir) 수 없기 때문이다."(SPP 68) 따라서 앞의 구절들(SPE 83~84)에서 들뢰즈는 여전히 실체의 변용을 말하고 있으며, 아직은 본격적인 의미의 양태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84쪽은 '실체'를 논하는 1부의 마지막 쪽이다.

 

나는 스피노자는 니체의 렌즈를 통해 교정될 때만 일의성의 존재론에 이를 수 있다는 <차이와 반복> 시절 들뢰즈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본다. 즉, 저 유명한 이른바 "스피노자-니체의 위대한 동일성(la grande identité Spinoza-Nietzsche)"(PP 185)이란 스피노자에게 꼭 있어야 하는 어떤 요소(일의성)를 니체를 이용해 채워 넣는 작업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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