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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책세상 판 니체 전집 단상

김재인 2005.04.17 23:33 조회 수 : 6769 추천:21

최근에, 강의도 있고 해서 읽어 볼/읽어야 할 일이 생겨, 책세상 판 니체 전집의 몇 부분을 들추다가 1권의 '니체전집 출간에 부쳐'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사실 1권을 구매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어차피 한 세트 갖춰놓아야 할 터이므로 기회가 되는 대로 구매는 하고 있는데, 급한 건 없으므로 또 서두르지도 않고 있다.) 거기에는 니체 수용과 번역의 약사가 있는데, 1969년의 휘문출판사 판과 1980년대 초의 청하출판사 판이 갖고 있는 한계도 적절히 지적되어 있다. 특히 유고와 <권력의지>의 문제가 간략히 지적되어 있으며, 이는 분명 시정될 필요가 있었으며, 실제로 새로운 번역의 필요를 재촉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언제나 가능할까 요원했던 작업을, 1999년 초 책세상 출판사에서, 전공자에 의한 완전한 번역을 목표로 편집위원회와 번역자들이 선정하면서 새 전집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문제들, 오역("잘못된 역어와 상이한 역어")을 수정하는 작업을 일차적으로 행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예를 들어, 먼저 '초인'으로 번역되어온 'Uebermensch'를 원어 그대로 '위버멘쉬'로 옮기기로 했다. '초인'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초월적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인데, 그렇데 되면 모든 초월적 이상을 거부한 니체의 의도에 반하게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권력 의지'라는 번역어도 바로잡았다. 'Der Wille zur Macht'를 그렇게 옮긴 것인데, 'Macht'는 자연 전체를 지배하는 보편적 힘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그것을 권력으로 한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일부에서는 그것을 '힘에의 의지'로 바꾸어 쓰고 있었다. 편집위원회도 그것을 '힘에의 의지'로 바꾸기로 했다. '초인'이나 '권력 의지'라는 두 번역어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었다."(12쪽)

그리고 이어서 덧붙이기를,

"문헌학에 연관되는 일부 서신이나 단상 등은 배제하고 가능한 한 철학적 주저를 중심으로 기획, 편집했다. 그리고 책 끝 부분에 상당 분량의 해설을 달아, 니체 사상을 소개하고 그 사상 속에서의 해당 작품의 위치를 밝혔다. 주(註)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달지 않았다. 주라는 것은 대체로 자의적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본문의 내용을 왜곡할 수 있는 등 오히려 불필요한 간섭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12-13쪽)

이상의 작업을 주관한 편집위원은 정동호, 이진우, 김정현, 백승영 등 총 4명이었다(아마도 나이 순일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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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언급들 중 자기모순적인 대목 몇 개를 지적함으로써, 책세상 판 전집을 대신하는 다른 전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아마 새로운 전집을 출간하는 순서 정도는 정할 수 있을 터인데, 항상 문제는 돈이겠지만, 국내 연구자 및 관심 있는 사람들을 총망라하는 '콜로키움'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주요 개념에 대한 회의를 한 다음, 개념 사전 또는 개념에 관한 논문집을 편찬하는 것이 가장 먼저일 것이다. 그 다음, '유고'나 <권력의지> 따위의 문제는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기출간 저서에 비하면 부차적이므로, 기출간 저서를 완벽한 모습으로 번역한다. 그 와중에 독서에 꼭 필요한 주석을 첨부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니체의 책을 읽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쪽마다 등장하는 신화나 고전문헌, 성서의 언급은 니체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독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 정도는 해결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며, 독일의 Studiensausgabe 14권이나 불어 Gallimard 판 번역을 예로 하여, 적절한 주를 달아야만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유고를 번역한다. 유고는 니체의 새로운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참고사항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식으로 니체의 숨은 사상은 사실은 유고에 다 있다고 보는 것은 억측이며, 사실 그런 억측이야말로 <권력의지> 같은 판본을 낳았던 것이다. 그리고 번역의 출간은, 돈이 허락한다면, 처절한 상호 검토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집 출간이 채 완료되기도 전에 새로운 전집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일이 다시금 필요해질 지도 모른다.

다시 얘기를 돌려, 책세상 판 편집의 원칙에 해당하는 위의 언급에 나오는 자기모순적인 대목을 지적하자.

1-1. 편집위원회는 "'초인'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초월적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인데, 그렇데 되면 모든 초월적 이상을 거부한 니체의 의도에 반하게 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는 맞는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니체가 굳이 Ueber-라는 말을 쓴 이유를 알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니체가 '초월'적인 의미에서 'Ueber'를 쓰지 않았다면 어떤 의미에서였을까? 내가 알기로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 글은 김진석, <니체에서 세르까지>의 1장 말고는 없었다. 거기서 김진석은 긴 성찰 뒤에 Uebermensch를 '넘어가는 인간' 또는 '인간 너머'로 옮기자고 제안한다. 편집위원들은 그냥 음역한 '위버멘쉬'를 쓰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데, 독자들은 기존의 '초인'이라는 말을 '위버멘쉬'라고 한다 해서 이해가 깊어지는 건 없다. 다만 '초인'으로 그냥 두었을 때 생길 오해가 아주 조금 줄어들 뿐이다. 그게 어디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연구자라면 그 이상은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주 최근에 든 나의 생각은, 니체의 Ueber를 살려 '초인간' 정도로 새로운 역어를 제시하면서 뜻을 정확히 해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정도이다.

1-2. 1-1에서 편집위원들은 "모든 초월적 이상을 거부한 니체의 의도"를 언급했는데, 이번엔 오히려 바로 그런 '초월적인 어떤 것'을 언급한다. "'Macht'는 자연 전체를 지배하는 보편적 힘을 가리키는 말이므로"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니체가 "자연 전체를 지배하는 보편적 힘"과 같은 것을 상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상당히 초월적인 발상에 가깝다. 차라리 "그것을 권력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더 정확한지 모른다. 그러나 역으로 그것이야말로 '권력'을 포함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니체는 권력욕과 지배욕을 중요하게 언급하곤 했다. 적어도 출간된 저서에 언급된 Macht의 의미를 정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힘'은 탈권력적인 뉘앙스가 강하고 '권력'은 인간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되는 것이 좋을까?

2. 지적하고 싶은 다른 하나는 'Der Wille zur Macht'를 '힘에의 의지'라고 옮기자는 제안인데, 세상에나, '에의'라는 표현 자체가 일본에서 온 것임을, 우리말에는 그 표현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말인지! 오히려 '권력 의지'는 일본에서 온 표현이라기보다는 한국적 표현이다. 일본에서 온 표현은 '권력에의 의지'였던 것이다. 아무렴 어떠랴, 그 문제는 부차적인 것을. 더 큰 문제는 zu를 '~에의' '~를 지향하는' '~를 향한'이라는 의미로 너무 확정해서, 확신해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zu는 영어의 on과 유사하게 일차적으로는 '붙어 있음, 인접'을 뜻한다. 그 의미가 확장되어 영어의 to라는 의미가 된 것이다. 사실은 니체에서 'Wille'와 'Macht' 각각 및 그 관계에 대한 성찰이 먼저 있은 후, 그 둘의 인접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번역이 나올 수 있으리라 본다. 또 하나 Kraft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도 분명치 않다. 그래서 최근 시도되고 있는 또 다른 대안 번역인 '힘의 의지'도 과연 적절할지 문제이다. 반복이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힘/권력'과 '의지'가 니체에게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지 먼저 밝히는 일이다.

3. 니체의 저술에는 적절한 주석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KGA의 진행 중에 간결본 형태로 나온 SA의 경우 14권 전체를 주석으로 바쳤겠는가. 사정은 프랑스나 일본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아직 번역 상태가 미흡한 영어권의 경우에도 인명, 신화, 고전문헌 등과 관련된 주석이 상당하다. 교양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인으로서는 적절한 주석을 배제하는 것은 잘못된 편집 원칙이다. 적어도 박종철출판사의 맑스-엥겔스 선집 정도의 주석은 있었어야 한다. 가령 15권 끝의 <바그너의 경우>의 후기를 보면 '바우보'라는 그리스어가 나오는데, 독자가 무슨 수로 이 말의 뜻을 알겠는가? 새로 검색을 해보거나 찾아다녀야 하는데, 책세상 판 니체 전집을 읽다 보면, 이럴 일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4. 편집위원들은 '유고'의 문제에 너무 열을 낸 나머지 기존 출판물, 즉 니체의 손을 거쳐 나온 확정판에 대해 소홀히 다룬 감이 없지 않다. 이것들의 번역 상태가 그다지 마뜩치 않고 서로 일관성도 결여되기 때문이다. 물론 20여명에 달하는 역자들이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리라. 하지만 야심찬 기획 아래 출간된 새로운 판본은, 아직 절반 남짓한 성과밖에는 나오지 않은 단계이긴 해도, 벌써부터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물론 무엇이 적절한 니체 사상이고 번역인지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물음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물음과 관련된 충분한 논쟁/전쟁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을까? 일반 독자가 문헌상의 문제 없이 편히 니체를 읽어도 좋을 날이 언제쯤 오게 될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각 권의 번역의 상태에 대한 평가는 기회가 될 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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