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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죽은 플라톤, 한국말로 살아나다

김재인 2007.04.18 19:52 조회 수 : 9231 추천:37

죽은 플라톤, 한국말로 살아나다
[인터뷰] 플라톤 원전 펴낸 '변방의 출판인' 전응주 이제이북스 대표
    이명옥(mmsarah) 기자   
지난 13일 국내 최초로 소장파 철학자들에 의한 플라톤 원전 번역본 <뤼시스> <크리티아스> <알키비아데스>가 철학전문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이번 플라톤 원전 번역은 '정암학당'의 소장파 학자 20여명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 2005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출간 한 바 있는 '정암학당'의 소장파 학자들은 지난 7년간 공동번역 작업을 통해 플라톤 강독을 끝내고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강독하는 중이다.

1차분 <알키비아데스>의 공동번역을 담당한 김주일, 정준영 박사는 일치된 번역어를 찾는 일, 서로 다른 문투를 조정하는 일, 각주의 개수를 정하는 일 등 세세한 분야에서까지 원칙을 세우는 일이 공동번역의 또 다른 어려움임을 토로했다. 그러나 공동번역이 가져오는 장점 또한 적지 않다. 각자 맡은 작품 및 해설의 초고를 놓고 여러 사람이 수차례에 걸쳐 면밀한 검토 작업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7년간 플라톤 원전 강독해 온 '정암학당'

▲ 김인곤, 이기백, 강철웅, 김주일 박사와 연구팀들.
ⓒ 박성환
통상 번역본을 출간할 때는 책의 순서대로 펴내지만, 이들은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부터 소개하기로 했다. 이는 플라톤의 원전 번역작품들이 가능하면 빨리 독자들과 만나길 바라는 번역자들의 간절한 바람이 작용한 탓이다.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들은 우리나라 그리스 철학계의 원로인 박종현 선생의 노력으로 이미 여러 편 번역됐지만, 플라톤 철학의 특성상 그 전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모두를 읽어야 한다.

강철웅 박사가 번역한 <뤼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 8장 이하에서 다룬 필리아론의 뿌리가 되고 있으며 에로스와 필리아에 관해 플라톤이 발전시킨 주제들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정호 교수가 번역한 <크리티아스>는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해 언급된 유토피아 사상의 철학적 기원이 되는 작품이다. 이 교수는 플라톤이 <크리티아스>를 통해 아틀란티스에 용감하게 대적해 승리를 거둔 고대 아테네의 이상적 사회상과 행적을 소개하면서 전통적 그리스 정신의 회복과 재정립을 기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주일·정준영 박사가 번역한 <알키비아데스>는 철학적 자기 인식이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려는 알키비아데스를 설득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면모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다. <알키비아데스>에는 여러 다른 대화편에 제시된 논의들이 압축적으로 들어있어 플라톤 철학의 입문서로 적격이라고 한다.

'정암학당'은 방송통신대 이정호 교수가 선친이 남긴 사재를 털어 시작한 철학학당으로 지난 2000년 이래, 20여명의 학자들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희랍어 원전을 주2회 꾸준히 강독해왔다.

1년에 2회, 강원도 횡성의 학당에서 1주일씩 합숙하며 하루 12시간 이상씩 강독에 매달린 그들은 지난 2005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출간 한 바 있다. 이미 강독을 끝낸 플라톤의 <대화편> 전집은 향후 5년간 수정 보완작업을 거쳐 위서를 포함한 43권 전집을 2010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독자들의 인문학 외면, 무분별한 번역서 때문"

▲ 전응주 이제이북스 대표
ⓒ 이명옥
'정암학당'의 결실이 빛을 발하게 된 데는 출판을 맡은 전응주(50) 이제이북스 대표의 노력이 크다. 스스로를 '변방의 무명 출판인'이라고 소개한 전응주 대표는 철학서를 출판하는 전문출판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소장파 철학자들이 7년간 희랍어 원전 강독 끝에 마무리한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위서 포함 43권) 완간을 2010년까지 계획하고 있다. 최근 1차 번역본 <뤼시스> <크리티아스> <알키비아데스>가 출간되어 지난 16일 만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철학전문 출판사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
"개인적인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첫번째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3년간 누워 계신 것을 지켜보며 '저렇게 인생이 짧고 덧없는데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두번째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번역철학서에서 느낀 답답함과 한계 때문이다. 우리나라 서양철학서들은 일본과 중국의 중역본으로 들어왔다.

서양과 우리나라의 언어구조는 판이하게 다른데 심각한 고민 없이 무분별하게 들여온 번역서들로 인해 많은 독자들을 실망시켰고 인문학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역자의 책임도 크지만 출판사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 서양철학서 번역 출판을 하게 되었다."

- 플라톤 전집 기획의도와 배경을 설명해 달라.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당연히 시작돼야 할 작업이었다. 서양사상의 근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사실 북한과 남한을 합치면 세계 10위권 언어 사용국이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완역본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나는 농담으로 베트남어로도 플라톤이 번역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실 우리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말로만 들어봤지 맛도 못 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역시 그렇다. 다행히 '정암학당'이 꾸준히 플라톤을 강독해 좋은 결과를 내게 된 것이다.

'정암학당'은 플라톤 강독을 끝내고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를 강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다른 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초고 교정을 보고 있어 조만간 독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완역본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원전 번역 플라톤 전집이 처음인데 작업하면서 어려웠다거나 아쉬웠던 점은?
"우리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우리말 가독성을 높이려면 원전에 없는 말이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되어 넣었다, 뺏다를 수없이 고민했다. 서양에서 플라톤 원전 번역은 불어, 독어, 영어 순으로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쪽도 처음엔 번역이 아주 뻑뻑하고 딱딱했다. 문장구조 자체가 서로 다른데다 그리스 원전 번역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비교 대상이 없어 더 힘이 들었다. 비빌언덕이 없는 상태라 '정암학당' 분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 이번 출판의 가장 큰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믿을만한 원전 번역 플라톤 전집이라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 서양사상을 이해하려면 플라톤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플라톤 전집이 없었다. 나는 현대 철학을 주로 보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근대에서 현대로의 논의가 어떻게 이어져 내려왔는지 많은 부분에서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길게 잡아 15년에서 20년 전 철학이나 인식론을 하기 위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신 분들이 현재 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아쉽게도 사회적 풍토로 인해 다음 세대를 이을 분들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작업을 해놓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는 플라톤 원전 번역이 영원히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늦었지만 지금 번역이 돼야 다음 세대에 누군가가 고치고 보완하면서 더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있다.

지금은 대학생들이 거의 관심을 안 가지고 있어 플라톤 전집을 원전 번역하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바람은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불어판 새로운 전집이 나왔다. 우리나라도 이번 플라톤 전집이 근간이 되어 30년 후든 50년 후든 새로운 전집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플라톤 <대화편>, 대학생이면 누구나 소화할 수 있어"

▲ 1차 출간된 <뤼시스> <크리티아스> <알키비아데스>
ⓒ 이명옥
- 이번 번역물이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어떤 책이든 독자들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취할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칸트 책을 철학에 막 입문한 사람과 석·박사가 이해하는 차원이 다르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주 난해하고 미리 예비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 있는 책이 아니라면 자신의 이해도만큼 배울 것은 다 배운다. 철학적 논의가 까다로운 것은 고등학생들에게 조금 무리일 수 있겠지만 아마 대학생 정도라면 플라톤의 <대화편>은 누구나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난해한 것이 아니라면 중·고등학생도 <대화편>의 큰 틀을 파악하는데 오해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비교적 재미있는 주제가 많이 다루어지고 있어 일반인들도 천천히 읽으면 분명 지혜와 생각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거기에 담긴 나름대로의 지혜나 생각을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 인문학의 위기가 회자되고 있다. 좀 더 체계적인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안 하나?
"재정적인 면에서의 지원이라면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만 관주도적인 번역은 절대 반대다. 공공기관에서 번역하는 것은 심각한 오역과 더불어 해악이 훨씬 많다. 차라리 그 돈 가지고 더 생산적인 곳에 사용하라고 말하겠다. 공공단체에서 저지르는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난다.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한 것은 인문학을 보는 시각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학계든 관료든 인문학을 잘못 전해줬다. 인문학 독자들이 줄어든 데는 마구잡이로 중역본을 출간한 출판사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이제라도 바른 원전 번역서들이 많이 나와 서로 비교 대조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인문학 독자들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정암학당'에서 꾸준히 강독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한 출판사에서 고전에 대한 믿을만한 번역본을 두 본 이상 출판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대조하면서 배울 수 있는 믿을만한 번역본들이 여러 개 나온 나라일수록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 후반기 플라톤 출판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크라튈로스> <에우튀데모스> <메넥세노스> 3권의 대화편이 더 나오게 될 것이다."

- 전문분야 출판인으로서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처음엔 좋은 책에 대한 인문학 독자들의 관심이 적은 것이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이 한 명만 있어도 고맙다. 정말 좋은 원전 번역이 이뤄지면 더 이상 인문학을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2007-04-17 18:2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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