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공동체와 포스트모더니즘

김재인 2006.05.18 20:43 조회 수 : 4803 추천:29

  1.
  공동체에 대한 갈망은 87년까지의 억압적 정치 상황에 대한 반대급부의 성격이 강하다. 그 이후에도 공동체를 향한 지향이 얼마간 지속되긴 했지만, 그것은 관성 때문이었지 그 이상의 추동력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는 지역이나 터전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땅 중심이고 영토 중심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역사상 존재했던 과거의 공동체의 모습들(두레, 농악 등)에 여러 장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오늘날 그 과거 공동체로 회귀하려는 소망을 갖는 것은 시대적으로 부적절하다. 과거 공동체의 존립 기반이었던 향토(鄕土) 또는 농촌은 사라져버렸고 다시 그리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영토에 기반을 둔 개념이라면, 영토가 해체되고 도시화가 가속화된 오늘날의 시기는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진 시점인 것 같다.
  우리의 과거에 존재했다고 여기며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은 이상향일 뿐 실제로 그런 공동체가 존재했었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과거 사회는 신분 계급의 지배나 식민 통치 아래에서만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지적으로 계급이나 식민 상태를 벗어났거나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것이 향토 공동체의 형태를 갖추었을 수는 있겠지만, 시대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추구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란 역사상 존재했던 공동체는 아닐 테고 이상적으로 상상한 공동체라 보는 것이 적합하겠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원형으로 삼는 서구 공동체가 실상은 노예제에 기반한 그리스 시민만의 공동체였을 뿐임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본다. 현재 사회의 모습에 대한 불만이 유토피아로서의 공동체를 갈망케 했다고 보는 편이 적합하다.
  그런데 여기서 현재 사회라는 것은, 1990년대나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아니고, 오히려 1987년 이전의 사회라고 봐야 한다. 꼭 공동체의 모습을 띠진 않더라도, 사회 정치적으로 자유가 억압당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이상적인 삶의 형태에 대한 꿈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강하게 일었던 공동체 지향이란 이상적 삶에 대한 일반적인 꿈의 한 구체적 모습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의 반대급부로서의 공동체를 꿈꾸는 일은 한국 사회에만 특수한 것도 아니었다. 공동체에 대한 연구자들은 그 어떤 요소보다도 현실 사회와의 대립을 공동체의 특징으로 삼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데니스 포플린, '공동체의 개념', 22쪽. 신용하 편, <공동체 이론>, 문학과지성사). 공동체란 단순한 분류 개념이기보다는 가치를 내포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대가 급진적으로 바뀌게 되면 공동체 지향의 형태도 바뀌거나 극단적으로는 공동체 지향 자체가 사그라들 가능성까지도 있게 된다. 한국의 1990년대 상황은 이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과거 시대와 비교했을 때, 가시적인 독재권력은 현격히 쇠퇴했고 정국은 유연화 국면을 걷게 되었다. 바뀐 정세 속에서, 꼭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정치적 탈출구는 쉽게 마련될 수 있었고, 이로써 공동의 열망이 아닌 개인의 열망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개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이 비슷하고 그 상황이 한 사회의 각 개인들에게 동시에 억압적으로 작용할 때에는 개인들은 연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경향이 있다. 공동의 억압 상황에 대한 공동의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다. 가령 5.18을 겪은 광주 사회 또는 더 넓게 한국 사회는 이런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적이 너무나 집중되어 있고 또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의 모습이 분명치 않고 아(我)와 타(他)가 혼동되는 경우에는 연합이나 연대라는 것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부분적 연대나 전술적 연대만이 가능할 뿐, 장기적으로 보면 갈 길이 서로 다른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의 한국 사회의 (특히 시민 운동의) 분화 양상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2.
  공동체를 향한 갈망의 해체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1988년 올림픽과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를 기점으로 해서이다. 이들 사건을 통해 1987년 정치적으로 주어진 자유와 함께, 이동 공간의 확대 및 다양한 문화의 직접 체험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전통적인 공동체를 지향하기보다는 개인을 발견하게 되었고 개인들의 좀 더 자유로운 결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타자의 경험이 낳은 가장 대표적인 문화적 사건이 1991년 서태지와아이들의 등장이다. 문화는 물질에 후행한다. 서태지와아이들이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서구 문화의 디테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사건은 전통적인 공동체가 더 이상 지향점이 되지 못하리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추구되는 것은 공동체적 가치보다는 개인적 가치이며, 나아가 사회 성원들이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 자체마저도 회의적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형식적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며, 독재의 그늘로부터의 벗어난 탄력이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점점 낮아지는 투표율이 이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 무관심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인데, 한편으로는 정치에 대한 환멸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성의 감소이다. 사람들이 결합을 추구하는 것은 같은 목표를 가질 때인데, 그 표출은 정치 참여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찌 보면 정치의 전성기는 1987년을 전후로 한 시기였다. 아니면 그 이전에 1980년이 있었고, 1972년이 있었고... 이런 식이다. 비민주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반독재와 민주화 같은 공동 목표를 갖게 되고, 정치적 차원에서부터 결합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민주화된 상황에서는 어떠한가? 긍정적인 목표를 설정해서 그 방향으로 함께 향하려 하기보다는 사람들은 각자의 목표를 향해 제각각 움직인다. 사람들의 기본적 성향은 그러하다. 사람들이 다시 하나의 목표를 위해 뭉치려면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그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상의 상황에서 영토와의 관계를 재고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개인이 영토의 종속에서 벗어날수록 공동체를 향한 열망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현재 삶(가령 도시 생활)의 부담 때문에 가끔 영토에 갇히기(귀향)를 원할 때도 있으나 삶은 도시에서 진행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한 번 해방을 맛본 개인은 궁극적으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고향이란 바깥에서만 그리움의 대상일 뿐 안에서는 속박이고 부동(不動)이기 때문이다. 마치 제대한 군대 얘기를 하듯, 고향을 말하는 것이다. 떠나왔기에 정겹고 가끔 그립기까지 한.
  1995년을 넘기면서는 영토로부터 이탈을 가속화하는 한 가지 상황 변화가 추가되는데, 그것은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보급이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의 변화가 이 무렵 가속되는데, 이로 인해 지리적 의미의 영토는 거의 해체되기에 이른다. 이제는 지리적 영토보다 사이버공간의 영토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기존의 지리적 영토는 해체되어 사이버공간 속에서 재편성된다. 공동체 또는 커뮤니티도 이제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2006년 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확인되고도 남는 점이지만, 당시에도 이런 변화의 조짐은 뚜렷했다. 지극히 개별화된 개인의 재결합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재결합 속에서 과거의 공동체 지향이 일부 복원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들 간의 만남과 결합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 실험중인 이 새로운 만남과 결합과 소통 속에 있다. 무엇이 탄생할지, 2002년 월드컵과 촛불시위와 대선의 경험이 어떤 모습으로 새로이 등장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지점에 있다.

  3.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불만이 많지만, 그 개념이 주로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영문학도들의 이론을 통해 소개되었다는 특징에 국한해 그 경향을 이해한다면, 그 경향이 수용되고 활발히 논의된 것이 1980년대 말 이후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앞에서 문화는 물질에 후행한다는 말을 했거니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은 변화된 한국 상황에 뒤따르는 일련의 현상 중 문화 담론 분야, 그것도 초기에는 문학 담론에 국한되었다가 그 범위를 확대하게 된 담론 분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치적 무지향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 때의 무지향성이란 개인주의의 극단적 경향들의 집합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은 현실 연관성의 결여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이 경우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 경향은 구분되지 않았다), 주류 담론 속에 급속히 전파되고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의적절하다 함은 꼭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고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이 당시의 시대 정황이 요구했던 바에 충실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담론의 수용이 사회에 변화를 미치는 경우도 있겠으나, 어떤 담론이 수용될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만 담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할 때,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초래했다기보다는 당시 진행되기 시작하던 변화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수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우리 주제와 관련해서 보자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했다기보다는 공동체가 해체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이 있었고, 그 두 흐름이 시간적으로 함께 진행되었다고 보아야겠다.
  물질적 조건의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담론의 수용이나 전파를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1980년대 말 이후 한국 사회에 일어난 변화는 유례없는 것이었으며, 폐쇄의 기간이 길었던 그만큼 변화의 속도는 컸다. 1988년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학교 도서관에서 브리태니커 연감을 보았는데, 1980년도 연감에 '광주'나 '남한' 항목이 검은 테이프가 붙은 채 삭제되어 있었다. 그 해 가을에 각종 청문회가 있었던 것과 연관시킨다면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짐작할 수 있을까?
  2006년 이 시점에서 공동체의 추구가 과연 물질적 조건의 차원에서 가능하며 또 필요한 것인지 탐구할 필요가 있겠고, 또한 '공동체'라는 것 자체의 규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한 탐구도 동시에 필요하겠다. 나아가 공동체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추구될 목표가 아니라면 새롭게 추구되어야 할 공동체의 모습은 어떨지, 현실적으로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지 탐구할 필요도 있겠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통과하고 나서도 여전히 남는 공동체의 열망은 과연 어떤 형태일지 모색하는 일은 중요하고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문살인의 전말 (김동렬 펌) [5] 철학자 2009.05.24 254466
공지 애도 노무현 [3] 철학자 2009.05.23 287132
공지 He will and should and must be back [5] 철학자 2009.04.18 260320
공지 그 때는 우리가 참 강했다 철학자 2008.02.22 276362
252 니체에 관해서 질문드립니다. [1] 단선 2007.07.03 8467
251 죽은 플라톤, 한국말로 살아나다 [1] 김재인 2007.04.18 9207
250 해석 부탁합니다 [6] 동동 2007.03.03 8094
249 ‘프랑켄슈타인’을 두려워하는 이유/이지훈 김재인 2006.07.27 7096
248 아무나 같은 곳에 글을 쓴다고... 김재인 2006.07.26 8101
247 선험적? 초월적? 번역관련질문 [3] 난만이 2006.07.23 9679
246 서울여대 '현대 철학의 흐름' 강좌 기말고사 안내 [4] 김재인 2006.06.16 7231
245 [re] 자료1 - 선악을 넘어 19절 번역 [1] 김재인 2006.06.04 7446
244 제3세계의 철학 [2] 김재인 2006.05.26 6132
243 권력의지의 바른 해석을 위하여 김재인 2006.05.24 149
» 공동체와 포스트모더니즘 [2] 김재인 2006.05.18 4803
241 '힘에의 의지'라는 바보 같은 번역어 [5] 김재인 2006.05.10 6782
240 개인주의의 최고도의 완성. 위즐 2006.05.08 4104
239 니체의 종교 평가에 대해.... [3] 한경우 2006.05.01 6490
238 니체와 의지 [1] 김재인 2006.04.30 1322
237 니체 저작중에서...불교에 관한...평가가 있는 부분이 어디에요?? [2] 한경우 2006.04.30 4404
236 [re] 이정우 씨의 글에 대한 약간의 커멘트 [1] 김재인 2006.04.29 4404
235 긍정하라, 가고 오고 돌고 도는 삶/이정우 [3] 김재인 2006.04.28 6050
234 서울여대 '현대 철학의 흐름' 강좌 중간고사 안내 [2] 김재인 2006.04.26 4759
233 과학적 노동에 대하여 / 이종영 김상 2006.04.19 3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