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나우누리 '철학포럼' 김완호 (nous71)님이 정리하신 내용입니다. 약 10회에 걸쳐 올린 내용을 차례대로 수록합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소크라테스까지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는 별도의 자료가 필요하겠죠? 개괄적이며, 입문용으로 좋겠습니다. - 김재인

------------------------------------------------------------

[서양철학사] 전문  

  1997/08/23 01:41 | 김완호 (nous71) | 조회 338  

  오늘부터 제가 서양철학사를 끄적거려 보기로 했읍니다.  제가 요즘 철학사를 공부하는데 그냥 정리를 해서 올리는 겁니다. 뭐 특별한 건 아니고요 그냥 읽은 책 요약을 해서 올리는 겁니다.

제가 읽는 책은

서양철학사 (上, 下),  요하네스 휠스베르거 지음.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서양철학사 100장면 , 김형석 지음.  가람기획.
소피의 세계, 요슈타인가이더 지음. 장영은 옮김. 이수영 교열. 김상봉 감수. 현암사.
희랍철학입문,  w.k.c 거드리 지음. 박종현 옮김. 종로서적.
희랍사상의 이해, 박종현 지음. 종로서적.
중세철학입문, 에띠엔느 질송 지음. 강영계옮김. 서광사. 등입니다.

주로 글을 올리는 것은 서양철학사 편에서 발췌해서 올립니다. 그리고 참고로 서양문화표라는 것을 올리는데 그것은 서양철학사 100장면에서 발췌한 것이고요. 거의 요약에 가까우니까 큰것은 기대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공부하고 정리한 데로 올려드릴것을 약속하죠...그럼 이만...

[서양철학사] 밀레토스학파  

  1997/08/23 06:35 | 김완호 (nous71) | 조회 296  

  그리스철학은 밀레토스에서 막이 오른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최초의 세 사람은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및 아낙시메네스이다. 이 세사람을 밀레토스학파의 구성원들로 우리는 부른다.

A. 탈레스 (Thales, 기원전 624~546)

  고대의 사람들은 탈레스를 일곱 사람의 현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플라톤은 트라키아의 하녀가 그를  비웃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탈레스가 왜 비웃음을 샀느냐  하면, 천체(이 지상을 초월한 것)를  관찰하는 데 몰두하여, 구덩이에 빠지는 추태를 연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면서 바로 발 밑에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a. 아르케로서의 물

최초에 철학하기를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최초의  근원(원리,arche)을 찾아 헤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근원들은 사물의 참된 실체(본질)이며, 이 참된 근원들에서 사물들이 생겨나서는 다시 그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탈레스는 모든 것의 원리를 물이라고 보았다.

b. 지혜

탈레스가 행한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근거라고하는 관념인데, 이 개념은 그가 제일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형이상학은 특수(개별)과학들처럼 단지 존재의 한 부분만을 잘라내어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존재 자체를 다룬다. 그리고  또 그 형이상학은 제일 근거를 찾아 헤메며, 그렇게 함으로써 감춰져 있는 곤란한 영역에까지 파고 들며, 실제적인 목적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앎(지식)자체를 위해서 추구하는 그런 앎이다. 탈레스가 얻으려고 애썼던 것은 바로 이런 앎이었으며, 따라서 그의학문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요, 형이상학이요, 철학이었던 것이다. 즉 일상적인 인간이나 직접 철학을 하고자 하지는 않지만 개별과학을 하고 있는사람도, 세계와 삶 전체에 관함 모습만은 항상 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서는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도 없으며, 행위를 할 수도 없으며, 정서가 안정될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즉흥적이고, 아무런 방법도 없이 생각을 한다.  학문적인 형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동기를 제일 처음으로 부여했다는 사실이, 탈레스로 하여금 실제로 철학의 아버지가 되게 했던 것이다.

c. 물활론.

우리는 만물이 물이라고 하는 명제와  만물이 신(紳)들로 가득차 있다고 하는  탈레스의 제이의 명제를 함께 묶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초의 철학적인 사고가  항상 세계를 인간의 측면으로부터 해석한다는 것, 즉 인간이 자기의 특수하고 독자적인 삶에서 알아낸  범주를 통해서 세계를 질서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탈레스의  신들은 초인간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탈레스가 자석도  쇠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영혼, 즉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아, 특별히 이런 태도를 알아낼 수 있다. 탈레스는 이 끌어당기는 힘을 생명의 측면으로부터만  이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소위 이런  물활론(物活論)은 자연철학적이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식론적인 유형에 속하는 태도이다.

d. 신에 관한 학설.

탈레스에게 있어서는 세계가 정말로 신들에 의해서  가득 채워져 있다. 바로 원리(원질)사상이 이런  생각으로 인도해 준다. 생각을 하는 지성(오성)은 백성들이 믿고 있는 신들을 증명해내지 못하나, 피지스(자연)라고 하는 현실에 관한 새로운 경험은 모든 것들을 가득채우고 있는 신적인 것을 다시 보증해 준다.


B. 아낙시만드로스 (Anaximandros, 기원전 610~545)

아낙시만드로스도 탈레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역시 밀레토스에 살았었다. 유럽최초의 철학책은 그의 손으로 쓰여진 것이다. 이 책에는 '자연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뜻의 자연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철학이나 형이상학을 뜻하고  있다. 그는 지도, 천체의(天體儀)  및 해시계 등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a. 아페이론.

그에 의하면 아르케(원리, 원질)는 아페이론(Apeiron)이다. 이 아페이론은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것, 또는 무한하게 규정되지 않은 것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아페이론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더 자세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뜻함과 동시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끝이 없는 것, 영원한 것  및 어디에나 항상 있는 것 등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낙시만드로스는 결과적으로 탈레스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존재의 원리를 파악하게 되었다.

b. 세계의 형성.

세계가 형성되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가지 대립들, 즉 따스함과 차가움, 축축함과 마름과 같은 것들이 아페이론을 구별짓는다. 이런한 분리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  무한히 많은 세계와 그 내용들이 생겨난다. 이런 세계들이  이미 '코스모스'라고 생각되고 있었다는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세계는 서로 대립되는 것들로  질서지워져 있다고 하는 생각에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는 지구란 그 직경이 높이의 세 배가 되는 하나의 원기둥이다. 그리고 이 원기둥의  주위를, 지구의 반경의 아홉 배( 3 x 3 =  1 x 9 )되는 거리에 떨어져서 별들이 돌고  있으며, 십팔 배 ( 2 x 9 ) 되는 곳에서 달이 , 이십칠 배 ( 3 x 9 ) 되는 곳에서 태양이 돌고 있다.  원래 액체로 되어 있던 지구 위에, 분리되는 과정이 진행되어, 그런  결과로 습기로부터 생물이 생겨났다.  이 생물은 처음에는 가시돋친 피부로 감싸여져 있었으나, 이 피부들이 찢겨지고, 다른 형태의  피부가 생겨났다. 인간도 역시 애초의 원시적인 형태에서 생겨났다. 인간의 직접적인 조상은 물고기였는데, 이 물고기는 옛날에는 상어처럼 물  속에 살다가, 뭍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육지로 올라왔다. 이것이 최초의 진화론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무한한 세계를 생물, 즉 정령(精靈)들과 신들이라고 생각했다.

C. 아낙시메네스 ( Anaximenes, 기원전 585년 경 ~ 528년)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였다. 그는 공기를 원리(arche)라고  보았다. 공기가 짙으냐 희박하냐에 따라, 모든 것이 공기에서 생겨난다. "공기가 느슨해지면 불이되고, 짙어지면 바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구름이 되고, 또 그 다음에는 돌이된다. 그러나 기타의  모든 것들은 모두 이 돌에서 생겨난다. 동시에 또 공기는 생물과 신적인 것으로 되기도 한다."

(참고)  서양문화사연표.

BC 200만년경.   전기 구석기 문화 시작.
   7000경.      신석기 문화 시작. 농경, 목축의 시작.
   4000경.      청동기 문화 시작
   3300경.      수메르 도시문명의 성립. 그림문자 출현.
   3100경.      이집트에 통일국가 출현.
   1792.        바빌로니아 왕조 (함무라비 법전)
   1100.        그리스에 폴리스 형성.
   955경.       솔로몬이 이스라엘왕이 됨.
   766.         그리스, 제 1 차 올림피아 제전.
   700         헤시오도스, (신통기, 일과 나날)
   624경.       탈레스 태어남.


[서양철학사] 피타고라스학파  

  1997/08/23 08:19 | 김완호 (nous71) | 조회 267  

A. 피타고라스학파의 역사.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에 사모스에서 태어나, 40세쯤 되어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오톤으로 이주하여, 주로 거기서 활동했음이 틀림없고 기원전 496년 거기서 죽었다. 그는  글은 남기지 않았으나 많은 사람을 모아서 단체를 만들어 그의 의견을 입에서 입으로만 전했는데 이 단체는 금욕주의적인 색체를 강하게 지닌 철학적-과학적, 종교적-윤리적인 단체였다.

a. 피타고라스 구파.

피타고라스 자신이 창설하고 지도했던 단체로  크로톤의 알크마이온(뇌가 심리작용의 중추기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의사), 필로라오스(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천문학자)등이다.

b. 신피타고라스학파.(두가지 방향)

I. 청종자 또는 파타고리스타이로서, 이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이어서 오직 어어받은 생활규칙만 귀를 기울이고 그 엄격한 금욕주의를 준수하여 고기, 생선, 술 및 콩을 먹지 않고, 목욕을 하지 않고, 문화와 학문을 돌보지 않고, 유랑생활과 거지생활을 했다.

II. 수학자라 불리우는 사람들로서, 구파의 일방적인 귀족주의를 이어받아 철학과 학문(과학), 특히 음악, 수학,기하학, 천문학 및 의학 등을  존종했다. 타렌트의 아르키타스(플라톤의 친구), 시라쿠스의 히케타스, 구파의 아카데미에 속하는 에크판토라,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쿠스 등을 들 수 있는데 구파의 세명은 지구가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해서 자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B. 피타고라스적인 생활양식.

피타고라스학도들은 내적, 정신적인 태도를 독자적인 형식을 갖춘 생활양식으로 만들어 냈는데 그 생활양식의 배경은 오르페우스교로부터 전해진 영혼의 윤회설이다.  즉 영혼은 하나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며, 죄를 짓게 되어, 지금은 육체에 사로잡혀 있는데 마침내 육체의 감각에서 풀려나 다시  순수한 정신이 될 수 있을 때까지는, 속죄와 편력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다. 그래서 정화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방법으로써 금욕(금식, 침묵, 매일같이 자기 자신이 행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아침 저녁으로 살펴보는  것), 정신적인 작업, 특히 철학과  수학(이 두가지에 의해서 인간은 감각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된다고 한다), 음악연습(음악을 즐긴다기 보다는 화음과 법칙에 의해서 인간이 다시 조화있게 형성된다고 한다) 및 체조(정신이 육체를 단련시킬 기회를 준다) 등이 있다.  이런 생활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우정과 모든 사람들을 형제간으로 만드려고 하는 이상(理想)이다.

C. 피타고라스의 형이상학.

a. 수, 페라스와 아페이론 조화와 코스모스.

피타고라스학파는 수가 만물의 원리(Arche)라고 가르침으로써 형이상학에  이름을 남겼다. 이렇게 됨으로써 존재자의 원리는 종전처럼 질료에서 찾아지지 않고 형상 속에서 찾아졌다. 수는 형상을 부여하는 자요, 이 형상을 통해서 규정되지 않았던 것이 규정된 것으로  된다. 페라스(규정을 내리는 자)가 수로 하여금 수이게 해주며, 이 수는 피타고라스가 그들의 형이상학을 도맡게 하는 원리가 된다.  "위대하고 완숙하고 모든 작용을 다하며, 하늘과  인간의 삶의 근원이고 지도자이며,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은, 수의 힘이다.... 이 수의 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한계지워지지 않고, 불명확하며, 볼 수가 없다." 음악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음들이 현(弦)의 길이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화음은 확고부동한 수의 관계에 의해서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옥타아브의 진동수는 기본음에 대해서 2대1, 제5도의 진동수는 3대2, 제4도는 4대3의 관계에 있다.

b. 대우주년.

대우주년의 학설에 의하면, 세계(우주)의 과정은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순환)을 그리고 있다. 별들과 체계는 항상 거듭해서 다시 같은 장소에 되돌아 온다. 그리고 세계 시계는 새로이 진행하는데, 영원히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만물이 이렇게 영원히 되돌아 온다는  것은 가장 작은 사물들에 있어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만물이 영원히 순환한다고 하는 학설 속에  우주가 조화잡혀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코스모스(조화가 이룩된 세계) 개념의 기초는 수이다.

수의 철학.

수는 홀수와 짝수로 이루어지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그 두 종류의 수에 성격을 다음과 같이 부여했다.
홀수(1,3,5,7,9) - 한계 ,  하나 ,  오른쪽 , 남 , 고정됨 , 직선 , 빛 ,  선 , 정방형
짝수(2,4,6,8,0) - 무한 ,  많음 ,  왼쪽   , 여 , 움직임 , 곡선 , 어둠, 악 , 구형

보라! 1은 하나의 점이요 (*), 2는 하나의 선( *---*)이며, 삼은 하나의 면(세꼭지점은 삼각형의 면을 형성한다), 4는 하나의 입체(네꼭지점은 하나의 입체를 형성한다)이다. 이처럼 수로부터 입체의 물체를 형성시켜 가졌다.

옥타브는 2:1 의 비율에 의해서 생기고, 제5음은 3:2 , 그리고 제4음은 4:3 의 비율에 의해서 각각 생긴다. 완전한 협화음이라 불리우는 음계의 음정이 1, 2, 3, 4의 수 사이의 비율로서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것들은 함께 합하면 10이 되는 수들이고, 10이라는 수는 수학과 신비주의의 저 진기한 피타고라스적 결합에 있어서 완전수로 일컬어졌다. 그것은 도식으로는 tetraktys 라 불리우는 도형, 즉
      *
     * *
    * * *
   * * * *
에 의해서 설명되고 있다. 10개의 점은 가장 완벽하고 안정된 삼각형을 만든다.


[서양철학사] 헤라클레이토스와 엘레아학파  

  1997/08/24 03:48 | 김완호 (nous71) | 조회 266  

  여태까지의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한결같이 존재자에 관해서만 물어왔다. 즉 모든 것이 성립되게 하는 근본질료는 무엇이며, 그리고 사물들을 지금 있는 그대로  있게 해주는 자는 무엇인가 들을 물어왔다. 시작과 끝은 고찰되어 왔으나, 그 과도기, 즉 생성 자체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되지  않았다. 이제 이런 문제가 싹트기 시작했으며, 당장  한 가지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명제가  제기되었다. 즉 생성, 곧 운동이 모든 것이며, 여태까지 존재자라고 보여져온 것들도 생성과 운동이라고 하는 명제가 되었다.

A. 에페소소의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44년경--484년)

a. 만물은 흐른다.

헤라클레이토스철학의 근본사상으로서 만물은 흐르며, 아무것도 한결같은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우리는 동일한 강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물도 이미 다른 물이지만 우리들 자신도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원리(원질)이란 물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고 아페이론도 아니고, 생성이다. 이 세계란 정도에 따라 불타오르기도 하고 꺼지기도 하는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었으며,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불이란 일종의 툭수한 물질적인 원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영원한 움직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 정도에 따라  조종되는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것의 상징이다.

b. 대립.

불은 '한 사람의 현인', 즉 하나의 '세계이성'의 상징인 것이다. 불은 이런 상징들이 나타난 형식이다. 생성은 항상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 끼여있다. 그리고 이 대립되는 것들이 운동을 흘러가게 한다. "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깨어 있는  자와 자고 있는 자, 젊은이와 늙은이는 항상  한 가지이며 동일한 것이다. 후자가 뒤집히면 전자로, 또 전자가 뒤집히면 후자로 된다.",  " 이것들은 서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든다. 즉 서로 가까워 졌다가 서로 멀어진다." 대립은 생산적이며, 생명으로 가득 차 있고 , 생산을 하는 힘이다. "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

c. 영원회귀

모든 생성과 모든 것들이 흘러가는 속에서 질서와 조화, 의미와 통일을 보고 있다. 대우주년이란 사건들이 순환하는 것을 뜻하며,  이 대우주년의 일년은 10,800  태양년을 포함하며, 모든 사물들이 영원히 회귀(回歸)하는 것을 뜻한다.

B. 엘레아학파.

a.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기원전 570년경-- 475년)

옛날의 신화의 여러 신들이 인간의 모습이나 비유에 따라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비판적인 눈으로  꿰뚫어 보고 " 유일한 신,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 그 모습으로나 생각에 있어서 죽어버릴 자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자, 항상 같은 곳에 머물러 계셔서,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다른 신적인 모습을 생각했다.

b.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40년경 -- 470년)

파르메니데스는 순수한 엘레아 출신이며, 이 도시국가에다 국법을 제정해 주었다고도 한다.  크세노파네스가 파르메니데스의 스승이었다고도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저작은 전해져 내려오는 그대로(관례대로) '자연에 관해서'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저작은 육중하고 당당한 육보귀(六步句)의 시체(詩體)로 쓰여져 있다. 제1부는 진리에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고 있다. 이 길은 존재에로 나아가는 길이며,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바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시의 2부는  억견(臆見)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억견의 길은 가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일반적인 죽어버릴 자들이 걸어가는 길이다.

I. 진리에로의 길.
   .. 존재자는 있다.   --  사람들은 항상 오직 존재자만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무(無)는 없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성은 없고 존재만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명제에서 '존재자'라는 말을 강조하고 이 말을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란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정지해 있다는 뜻을 갖는다.
   .. 사고는 존재다.   --  사고와 존재는 동일하다. 사상과 우리들이  그것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은 동일하다. 왜냐하면 말해지는 그 존재자가 없으면,  사고를 만날 수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있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반대편에 서서,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일종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 하나와 모든 것.   --  서로 연관이 되어 있는 존재가 있다. 이런 존재는 하나(一)요, 모든 것(萬物)이다. 여러 개의 세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 전체는 하나요, 보편적이어서 항상 도처에서 동일한 것이다.  

II.  억견의 길.
     억견이 이성적인 인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각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세계의 생성과 다수성이라고 하는 모습은 이런 감각을 바탕으로 해서 생긴다. 이런 모습은 사실에 있어서 망상이요 공상이다.  감각적인 인식이 이상(理想)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대중은 억견과  가상(假象)으로 만족하고 있다. 학문적인 진리는 그것이 참된 진리인 한, 영원히 동일한 진리다.

c. 제논(Zenon, 기원전 460년경)

제논도 순전한 엘레아 출신이며, 파르메니데스가 가장 귀여워했던 제자다. 제논은 다수성과  운동은 없고, 오직 정지해 있는 한 가지의 존재만 있다고 하는,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을 기초지으려고 하면서 운동을 부정하는 네 가지의 유명한 증명을 가지고 있다.

I.   운동을 할 때에는, 우리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운동은  없다. 모든 구간들은 연장된 것으로서 무한히 많은  조그마한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다. 무한히 많은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재려고 하는 것은, 끝이 없는 어떤 것의 끝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II.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낼 수 없다.  즉 그가 앞서 있는 거북이에게까지 가는 동안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에 거북이도 그만큼 멀리간다. 계속해서 이렇게 된다.
III.   나르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 화살은  겉보기로만 움직이고 있을 뿐, 사실에  있어서는 매순간마다 공간의 일정한 부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어떤 장소에 있는 것으로서의 '존재(있음, 있는 것)'는 원래 정지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화살이 날아가는 그 거리는 무한히 많은 이런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화살은 움직이고 있지 않다.
IV.  모든 운동은 환각(幻覺)이다. 왜냐하면,  두 개의 물체(a,b)가 꼭 같은  속도로 동일한 공간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이 두  개의 물체가 같은 공간에 정지하고  있는 물체(c)를 지나, 서로 교차할 때, 원래의 속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사] 기계론자들과 아낙사고라스  

  1997/08/24 03:50 | 김완호 (nous71) | 조회 222  

A. 기계론자들.

a. 엄페이도클레스(Empeidokles, 기원 492년경 -- 432년)

엄페이도클레스는 아크라가스, 즉 오늘날의 시칠리아섬의 아그리겐토 출신으로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심신의 정화를 주장하는 종교의 사제요, 선지자요, 신비가였으며,  다른편으로는 순회설교가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으며, 정치가요, 의사고 시인인 동시에 냉정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정화(淨化)"와 "자연에 대하여"라는 저작들 중의 유명한 단편이 아직도 남아 있다.

I. 원소.

엄페이도클레스가 첫 번째로 제기한 문제도 역시 원리(Arche)문제였다. 밀레토스학파의 사람들이 오직 한 가지의 근본질료만을 가정했던 것과는 반대로, 그는 네 가지의 근본적인 실체를 주장한는데, 이 네 가지의 실체는 불, 물, 공기, 흙이다. 이것들은 존재의 네 가지 '뿌리'다. 이 네가지의 뿌리들이 섞여지고 흩어지고 함으로써,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 네 가지는 질적으로  궁극적인 것으로서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는다. 존재의 뿌리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말로 해서, '원소'의 개념이라는 말로 남아있다. 원소와 관련되어 있는  세계의 궁극적인 구성요소가 영원하다고 하는 그의 두 번째 생각은 후세의 사람들이 "물질보존의 법칙"이라고 한다.

II. 사랑과 미움

엄페이도클레스는 질료에다 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원초적인 실체는 어떻게 하든 움직여야만 한다. 이 운동은 두 가지의 원초적인 힘, 즉 사랑과 미움에 의해서 생긴다. 당장 모든 것들이 사랑 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다가, 당장 다투는 미움 속에서 하나 하나의 사물로 분리되어 버린다.

III. 기계론.

끊임없는 혼합과 분리는 '서로 뒤바뀌면서',  '차례와 시간이 바뀌면서' 행해진다. 이러한  혼합과 분리는 존재 그 자체인 법칙에 의해서 생긴다. 따라서 스스로 생기는 것이며,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b.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기원전 460 --370)

I. 존재 - 원자.

데모크리토스 철학의 기본사상은 원자에 관한 이론이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있어서도, 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한 가지 모양의 존재가 있을 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파르메니데스의 하나밖에 없는 존재를, 그 이상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원자(Atom = 나눌 수 없다는 뜻)라고 불리는 궁극적이고 가장 작은 분자로 분해시킨다. 원자는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꿰뚫고 나갈 수 없는 것이며, 무겁고, 영원하며, 파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원자의 수는 무한하다. 원자에는 질(質)이 없다. 모든 원자들은 꼭 같은 종류다. 그러나 원자의 모양과 크기들은 다르다. 또 원자들은 서로 다르게 배열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위치를 택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해서, 즉 순수히 양적인 계기들에 의해서 사물들 사이의 차이가 설명될 수 있다.

II. 공간.
원자의 개념에는 텅 비어 있는 공간의 개념도 속한다. 모든 것들이 다 함께 엉켜붙어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지 않는 이상,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탁 벌어져 있는 존재 사이에는, 있지 않은 것, 즉 텅 비고,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있다. 이 텅 비어 있는 공간은  물체들이 구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체들 안에도 있고, 또 부분적으로는 물체의 밖에도 있다.

III. 운동.

원자들은 텅 빈 공간에서 움직인다. 운동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운동은 영원하며, 강제적으로, 즉 압력과 충돌에 의해서 생기며, 자동적이다.

B.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년경 -- 428년)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클라쓰메나이)의 철학을 아테네로 가지고  간다. 그런데 이 아테네는 물론  그 도시의 최초의 철학자에게 신을 모독했다는 판결로 보답했다. 그  이유는 아낙사고라스가 태양은 신이 아니라, 이글거리는 돌덩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이런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람프샤코스로 피해 가서, 거기서 최고의 존경을 받다가 죽었다. 그가 타향에서 죽는 것을 불싸히 여겼을 때, 그는 저세상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서나 거리가 같다고 말했다.

a.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아낙사고라스는 인간이 섭취하는 영양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 " 어떻게 해서 머리칼이 아닌 것에서 머리칼이 생겨나고 고기가 아닌 것에서 고기가 생겨나는가?"고 묻는다. 그래서 그는 어떤 것으로 된 소재(자료)는 앞으로 될 것과 종자로서는  이미 동일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궁극적인 구성요소는 씨앗이며, 따라서 완성된 산물과 질적으로 꼭 같다. 이 궁극적인 구성요소는 동질소(同質素)이다. 완성되어 있는 사물들은 영원하며, 파괴되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는다. 한가지 정해진 질이 우세함으로서, 개별적인 사물이 그 특색을 갖게 된다. "그 중에서도 하나의 사물에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그것이 가장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서, 하나의 개별적인 사물을 형성하고 있으며, 또 형성해 왔다."

b. 세계는 물질 이상의 것이다.
  
형상론적-목적론적으로 존재를 해명하는 일은, 논리적임과 동시에 다이나믹(역동적)이기도 한 한 가지의 원리를 전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사고하는 힘임과 동시에 의지의 힘이기도 한 정신을 이 원리라고 생각했다. 그의 NOUS(누스,정신)는 만물들에 있어서의 운도의 근원이며, 동시에 질서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 NOUS는 무한한 것이요, 자주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전지하고 전능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c. 공적.
  
1. 새로운 인과관계, 즉 전체를 걸머지며, 질서를 지우는 의미원인과 목적원인을 발견한 것.
2. 일종의 새로운 존재, 즉 정신을 내세운 것.
3. 운동의 독자적인 원인을 지적한 것.

아낙사고라스는 여전히 정신을 '미세하고 순수한 질료'라고 보았기 때문에, 정신을 물체적인 것에서 완전히 구별지우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최초의 이원론자(二元論者)였음에는 틀림없다.


[서양철학사] 소피스트  

  1997/08/26 03:36 | 김완호 (nous71) | 조회 381  

A. 소피스트들.

a.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von abdera, 기원전 481년경 - 411)

맨 처음의 소피스트이다. 모든  소피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방랑생활을  했으며, 아테나이에 나타나, 제일급의 정치적인 그룹들과 접촉하다가, 당장 공공생활에 끼여든다. 신들에 관한 자기의 저작 때문에, 그는 신을 모독한 사람으로 고소당한다. 그 후, 도망다니다가 죽고 만다. 진리에 관한 그의 저서에는 유명한 '인간 척도론(Homo-Mensura-Satz)'이 실려있다.

b. 프로디코스(Prodikos)

그도 역시 정치가로서 활약했다. 그의 저서 '연령론(年齡論)에는 갈 길을 못 찾아 헤메는 헤라클레스에 관한 아름다운 신화가 실려 있다.

c. 힙파이스(Hippais)

그는 박학한 사람이었으며, 세계를 여행한 사람이요, 화려한 말을 하는 사람이요, 모든 예술에 능통한 사람인 동시에 외교가이기도 했다.

d. 고르기아스(Gorgias von Leontinoi, 기원전 483-375)

그는 유명한 웅변가였고, 수사학의 선생이기도 했다. 그는 또 정치생활에 몸을 던졌었다.

e. 칼리클레스(kallikles)와 크리티아스(Kritias)

두 사람은 고르기아스의 제자인데,  강한 자의 권리를 주장한 전형적인 대표자이다. 크리티아스는 플라톤의 친척이다. 기원전 404년 과두정치가 실권을 장악하자, 그는 30인의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f. 트라시마코스.

아테네에서 유명한 소피스트. 나중에 플라톤의 대화에 소크라테스와 대화상대로 등장한다.

B. 소피스트의 세계관.

a. 변론.

소피스트의 목표에 이르는 길은 변론이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통달해 있어야만 했고, 항상 모든 것에 관해서 말할 수가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변론은 확신을 주는 것이어야만 했다. 확신을 주는 기술은 소피스트들의 덕(arete)이다.
프로타고라스는 "빈약한 사실을 보다 강한 사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대답하고 있다.
고르기아스의 변론이란, 그것을 먹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런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독을 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호리기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확신'이란 진리에만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항상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을 관철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라고는 하지 않고 설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소피스트들은 자기들의 기술을 '영혼을 지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영혼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로잡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의 기술은 단순한 논쟁술이며, 말을 곡해하게 하는 것이며, 겉꾸밈이다. 객관적인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이해관계가 중요하다.

b. 회의주의와 상대주의.

프로타고라스는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진리는 없다고 주장한다. 진리는 대상에 매달려 있지 않다. 객관적인 사태는 어떤 정신에 의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우리들의 정신에 끌어들여지지 않고 항상 주관 자신이 스스로의 의견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물들을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나에게는 개별적인 사물들이 나에게 나타나는 그대로이고, 너에게는 너에게 나타나는 그대로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진리라고 말해지는 모든 것에 대해서 척도가 되며, 그뿐 아니라 가치, 규범, 법률, 이념 및 이상과 같은 모든 것의 척도가 된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있다는 사실의 척도요,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있지 않다는 것의 척도다."

c. 권력사상.

플라톤의 대화편, '고르기아스'에서 칼리클레스는, 강한 자가 항상 약한 자보다 많이 갖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주장한다. 이런 것이 법이요, 자연법이다. 약한자, 평범한 사람들 및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위해, 윤리와 법률을 발명해냈을 뿐이다. 우리들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허구를 이어받아, 그것으로써 강한 자를 제압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말로  힘센 자가 권력을 움켜쥐고, 모든 규약을 다 폐기하고, 제일인자로 되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친척들만을 돌보고, 대담하고 거침없이  자기의 욕망을 채우며, 호화로운 군주의 생활을 해나간다. 그리고 이때에야  비로소 날 때부터의 의인(義人)이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법은 법이 아니라 자연일 뿐이다. 그리고 개인주의요, 자연주의다. 왜냐하면 자연을 넘어선 이념적인 구속은 없고, 오직 살과 피, 욕망과 본능만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사실에 있어서는 혼돈이요, 무정부상태이다.

[서양철학사] 전문1  

  1997/08/26 03:37 | 김완호 (nous71) | 조회 225  

이상으로 고대철학부분의 소크라테스 이전을 마쳤습니다.  고대철학은 흔히 세부분으로 나뉘지요.  하나는 소크라테스이전의 철학, 앗티카의 철학, 헬레니즘과 로마제정시대의 철학.  이렇게요...그 중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을 끝냈습니다....

하나의 도표로 나타내보겠습니다.

고대철학 .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1). 밀레토스학파.
    2). 피타고라스학파.
    3). 헤라클레이토스사상.
    4). 엘레아학파.
    5). 기계론자들.
    6). 아낙사고라스사상.
    7). 소피스트.
  
삶에 있어서 높이와 깊이가 함께 있는 일도 가끔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리스정신은 소피스트들에 의한 낮은 곳, 즉 그들의 피상적인 태도, 경박한 언동, 파괴적인 비판, 상대주의 및 회의주의 등을  지나오는 동안에 뿌리채로 뒤흔들리고 위협을 받으면서 그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힘과 생명을 다하여, 소피스트들에게 반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세찬 반동이었을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시기의 중심적인 인물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이들의 철학을 우리는 앗티카철학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철학을 고전적인 절정으로 이끌어 오렸으며, 우리  현대인들의 젖줄이 되는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부분적으로는 여전히 소피스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과 대결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말의 여운은 당대의 적대자들을 넘어서서, 무한한 미래에까지 울려퍼집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은 전 소피스트의 사상을 무척 좋아하고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주의이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소피스트를 좋아합니다. 제 사견이었습니다.

[서양철학사] 소크라테스  

  1997/08/26 03:38 | 김완호 (nous71) | 조회 769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 경에 아테네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산파(조산원)였다. 그 자신의 관심을 끈 것은, 돈벌이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관심을 끈 철학이 옛날 이오니아의 철학은 아니었다. 그의 사고의 중심이 된 것은 인간이었다.  인간이라도, 진리와 가치가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써서 남긴 것이 없다.  그 대신에 그는 살아있는 철학을 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거듭해서 꼭 같은 것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즉 그는, 사람들이 제 자신을 잘 알고 있는지(너 자신을 알라), 진리가 무엇이며, 앎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지, 또 인간의 가치를 이미 꿰뚫어 보고 파악하고 있는지 등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사람들은 거듭해서 철학적인 것에 관한 말을 하고 또 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을 붙들고 늘어져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너희는 도데체 그 말의 뜻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 말에서 무엇을 생각하느냐?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려고 하느냐? 그 결과를 이미 내다보고 있으며, 그것이 너희들의 근본적인 전제들과 일치하는지 않은지를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이럴 때마다 거듭해서,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것이 그의 음미(시험)해보는 기술이요, 스스로의 주장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시키는 기술이다. 이러한 것이, 착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자기를 반성하게 하고, 여태까지 혼란되어 있던 생각들을 분명하게 해주고 새로운 통찰을  낳게 해 준다. 이것이 그의 '산파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기술을 자기의 어머니한테서 배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그는 항상 남들에게 자기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며, 지식과 덕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려면 아직 까마득하다고 하는 느낌을 주었다. 자기자신에 관해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이 그의 아이러니이다. 이 아이러니가 자극을 주며, 고무시켜 주기도 한다. 이 아이러니는 사람들과 교제할 때의 그의 위대한 교육수단이었다.
불행하게도 자기들이 이어받은 궤도만을 달리고 있던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자기들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이 영원한 비판자에 대해 악의를 품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장 혁신을 일삼는 자라는 둥, 전복을 꾀하는 자라는 둥 하는 관습적인 욕설을 퍼붓게 되었다.
희극도 그를 끌어내렸다. 그러나 희극도 "배고품이 그를 아첨하는 사람으로 끌어내리지 못했다"고 시인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크세노폰은 적과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대한 그의 용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플라톤은 밤새워 술을 마시고도 그가 끄떡없었다고 전해주고 있다.
아르기누스의 재판에서, 그는 분노에 들떠 있는 백성들에게도 자기의 의견을 꿋꿋이 주장했고 30인의 참주들이 국가의 권능을 이유로, 정치적인 살인에 편들어 주기를 요구했을 때, 그는 직위와 생명을 무릅쓰고, 과감히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거부를 당한 사람들의 미움과 광란은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정치가 개입되어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399년, 사람들은, 그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새로운 신들을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그를 신을 모독한 자라고 재판했다. 그는 감옥에서 탈추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를 않았었다. 그 이유는 자기 안에 있는 소리, 즉 다이모니온이 자기 자신과 동포들을 시험(음미)하라고 한 델포이의 신이 그에게 내린 과업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고 속삭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를 변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친애하는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에게보다도 신을 더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숨을 쉬고, 힘이 있는 한, 진리를 추구하고 여러분에게 경고를 하고 계몽을 하며,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나의 여태까지의 방법대로, 양심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여, 가장 위대하고 정신적인 도야로 뛰어난 도시의 시민인 너는, 너의 지갑을 가능한 한 많이 채우고, 명성과 존경을 받으려고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덕적인 판단, 진리  및 너의 영혼을 개선하는 데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또 노력도  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는 죽지 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최후까지 친구들과 더불어 영혼의 불멸에 관해 철학하면서, 조용히 그리고 점잖게, (독인삼의 잔)을 마셨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모습을 갖춘 철학 그 자체다. 그는 지성만 가지고 철학했던 것이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지고 철학했었다. 우리들은 그의 본질(존재) 전체 속에서, 진리가 무엇이며,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의 철학은 실존적인 철학이었다.


[서양철학사] 소크라테스학파  

  1997/08/26 03:38 | 김완호 (nous71) | 조회 516  

  소크라테스는 일정한 학파의 교의(도그마)를 남겨주려고 했다기보다, 오히려 철학하는 것 자체를 자극했다. 윤리적인 가치에 관한 그의 주장이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고, 최종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학파들은 특별히 눈에 띠게 대립되어 있다.

A. 메가라학파.

메가라학파의 창시자는 메가라의 에우클레이데스(Eukleides von Megara, 기원전 450년경- 380년)다. 그는 엘레아주의와 소크라테스주의를 종합하려고  애썼다. 그에게 있어서는 엘레아학파가 주장한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 한 가지의 존재가, 소크라테스가 항상 말하고 있던 선이다.
메가라학파의 방향은 소크라테스의 가장 나이많은 제자, 에우불리데스(Eubulides), 디오도로스 크로노스
(Dodoros kronos, 기원전 307년에 죽음) 및 스틸폰(기원전 300년 경에 죽음) 등에 의해서 유명해졌다.
이들은 메가라식의 변증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인데, 이 변증법은 점차로 내용도 없이 꼬치꼬치 캐고드는 논법으로 발전하여 궤변으로 되어버리고 말았다. 예를 들면, 뿔이 달린 사람인데 그 명제는 '네가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네가 아직도 가지고 있다. 너는 뿔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너는 뿔을 가지고 있다.'이다.
이 학파는 또 소크라테스의 다른 한 가지의 중요한 사상인 자족(自足)의 이상(理想)도 보존하고 있다. 이 이상이란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덕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상인데, 스틸폰은 이것을 존중하여 스토아학파에게까지 전해주었다. 왜냐하면,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Zenon)은 스틸폰의 제자였었기 때문이다.
      ***   엘레아 학파의 제논과 스토아 학파의 제논은 동명이인이다...
그리고 또 변증법도 아마 논쟁술 이상의 것이었던 것 같다. 현대의 수학적 논리학은, 오늘날 메가라학파를 논리학의 역사에 있어서 한 가지의 중요한 발전단계로 보려고 한다.

B. 엘리스-에레트리스학파.

엘리스-에레트리스학파는 파이돈(Phaidon)이 창시한 학파다. 그런데 이 파이돈은 원래 노예였는데,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 이후로 그에게  있어서는, 철학이 영혼의 구원이요, 참된 자유에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관련은 이  학파가 가장 밀접했던  것  같다. 메네데모스(Menedemos)에게 있어서는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적인 용어들이 모두 되살아나 있다.

C. 키니코스학파.

키니코스학파의 우두머리는 아테네의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von athen,  기원전 445-365)였다. 그는 키노사르고스라는 체육관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학파전체가 이런 명칭을 갖게 되었다. 그는 외적인 재산을 극도로 경멸했다. "욕정을 만족시켜주기보다, 오히려 미쳐버리는 것이 낫다." 이러한 생각이 문화와 학문의 종교와 민족적인 단결과 특히 습관과 예의 등을 경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Diogenes von Sinope, 기원전 324년에 죽음)는 사상에 의해서라기보다, 특이성에 의해서 주목을 끌었다. 자족(自足)의 사상에 충실하기 위하여, 그는 거지가 되어 통속에서 살았는데,  한 어린 아이가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을 보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잔까지도 내동댕이치고 말았었다. 그는 문화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역사를 등지고 살았다. "나는 통용되고 있는 여러 가치들을 뜯어 고친다."고 하는 것이, 그가 거듭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는 고대에 있어서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모토의 선구자였다.
  *  하루는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서 "당신이 제일 원하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내가 당신이 원하는 소원을 다 들어주겠습니다."라고 했다.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태양을 가리고 있군요. 난 당신이 비켜나서 태양을 막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요청에 응하지도 않았다.
테에벤의 크라케스(Krates von Theben)도 키니코스학파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고향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이었으나, '덕'을 높이 숭상하여, 소유물을 몽땅 다 버리고 키니코스학파에 가입하여 거지생활을 했다.

D. 키레네학파.

이 학파의 창시자는 키레네의 아리스티포스(Aristipp von  Kyrene, 기원전 435년경- 355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들의 바탕은 쾌락주의다. 가치는 오로지 쾌락에만 특히 신체적인 감각에서 느낄 수 있는 쾌락에만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가치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개념과  이념에 의해서 생각 속에서만 근거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체험될 수 있는 것만을 우리들은 꿰뚫어 볼 수 있다.---섹스토스(수학자에 대한 반론)".
즉,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감각적인 상태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태란, 아리스티포스에게 있어서는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쾌락을 프로타고라스처럼, 완전히 주관주의적, 감각론적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자신 안에 가치의 척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낀 것을 참되고 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 arete 는 episteme 이다 "  

  1997/08/28 09:25 | 김완호 (nous71) | 조회 179  

  살라미스 해전 이후에 여러 지역으로부터 영광의 도시 아테네로  몰려든 저 소피스트들은 버넷(Burnet)이 지적했듯이 결코 학파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자기들의 활동에 대해 대체로 공통된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arete를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물론 arete(아레테)는 희랍 문화의 시작과 더불어 쓰이기 시작된 말이지만, 학문적 관심의 대사으로서 새삼스레 문제삼아지는 것은 소피스트들에서 발단이 된다. 소피스트들의 시대에 와서 새삼 문제삼게 된 이 arete는 희랍적인 사고를 가장 잘 특징지어 주는 말들 중의 하나다. 왜냐하면  arete는 그 시대마다의 희랍인들의 이상 내지 신앙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rete는 원래부터 고차원적인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희랍인의 이상이 높아짐과 더불어 그 의미를 달리해 간 것이다. 그리고  arete에 있어서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것이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극히 학문적인 데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쓰인 말이란  점이다.
무릇 현존하는 사물들에 있어서는 그 사물들의 종류에 따른 특이성이 있고, 그 특이성이 가장 효과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 최선의 상태가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꼭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 있어서도 그가 속하는 부류에 따른 특이성이 있고, 또 이 특이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최선의 상태를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사물이나 사람에  있어서의 그 특이성에 따른 최선의 상태를 일컬어 희랍인들은 arete라고 일컬었다. 그러한 상태란 같은 종류의 사물들이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이다. 따라서 그러한 상태에 도달한 또는 그 상태를 실현하여 있는 하나의 사물이나 한 개인은 자기가 속하는 부류에 있어서 가장 빼어난 자, 즉, 훌륭한 자다. 그때 이와 같이 훌룡함 또는 빼어남을 일컬어 희랍인들은 arete라 했다. 그래서 arete는 영어로는 goodness나 excellence로 옮겨질 때 적절한 번역이  된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글을 쓰면서 사용하고 있는 볼펜에 있어서의 arete는 내가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게끔 그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하는 것이다. 칼에 있어서는 가장 잘 드는 것이 arete이다. 다시 말하면 만년필의 만년필다움, 칼의 칼다움이 곧 그들에 있어서의 arete이다. 이는 사람에 있어서도 꼭 같다. 귀의 arete는 잘 듣는 것이고, 눈의 arete는 잘 보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직업과 연관지을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령 구두를 만드는 사람에 있어서는 구두를 가장 잘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arete요, 벽돌 굽는 사람에 있어서는 벽돌을 가장 잘 구워냄이 그의  arete요, 농부의 농부다움, 즉 그의 arete는 훌륭히 농사짓는 것이다.
"국사를 훌룡히 처리할 수 있음이 남자의 arete요, ...여자의 arete는... 제 집안의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다. ...아이나 노인에 따른 arete가 남자에 따른 arete가 ...자유인과 노예에 따른 arete가 가각 다르다."(Platon, Menon, 71e)  즉 가장 남자다움이, 가장  여자다움이 그네들 각자에 있어서의 arete이다. 그렇게 보면arete는 기능(ergon), 즉 할 일이나 하는 일(ergon)과 관계되는 말임을 또한  우리는 알게 된다. 그래서 arete는 '...에 능함'의 뜻을 원래 지니고 있다. 그러나 희랍인들의 생각은 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만일 arete에 관해서 그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면  희랍인들의 희랍인다움은 그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다. 희랍인들의 탐구 정신은 이 arete의  문제점에 있어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의 arete의 탐구에 있어서 희랍적 사유는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들은 arete를 부분적으로만 보려 하지 않고, arete에서도 보편성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사람됨을 그 전체성에  있어서 이해하려는 노력(das Sreben, das Menschliche in seiner Ganzheit zu erfassen)"을 보인 사람들이다.
나이나 신분, 성별에 관계없이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것이, 모든 인간에 있어서 꼭 같이 적용될 사람다움이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해 본 그들이다. 인간을 일반화시켜놓고서 인간 일반, 즉 인간 자체에 있어서의 arete가 무엇일까하고 탐구하기 시작한 희랍인들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사람다운 사람으로 되게 해주는, 그리하여 타인보다 빼어나고 훌륭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탐구하기 시작한 그들이다. 한 인간을 사람 구실하게끔 해주는 훌륭함, 빼어남, 사람다움, 이른바, 덕이 다름아닌 arete다. 이 "사람 구실" 내지 "사람다움"이 인간에 있어서의 arete이다.
이 arete가 본격적으로 탐구되기 시작한 것은 물론 소크라테스에 있어서다. 그것은 희랍 비극의 인간 탐구와 밀접히 연관된 일련의 탐구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희랍인들이 arete를 문제삼게 된 역사는 훨씬 오래된다. 문헌상으로는 호메로스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arete는 원래 전쟁의 신 Ares로부터의 파생어다. 따라서 arete는 처음엔 전쟁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싸움터에서 가장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용기(andreia)다. 그러므로 Homeros에 있어서는 arete는 andreia와 마찬가지의 동의어였다.  호메로스의 작품 속의 시대에 있어서 용기는  사람됨의 최대의 요건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있어서 용기는 곧 덕이었고 최선의 가치 개념이었다. 저 Ilias의 각  권은 그러한  용기로서의 arete를 실현해 보인 사람들의 전공(aristeia)기록이다. 그러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사람다운 사람들(homines maxime hommes)"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헬라스의 지성도 충실해져 갔고, 따라서 arete의 내용도 달라지며  풍부해져 갔다. 헬라스의 정신사는 획일적으로 말해서, 그 시대마다에 있어서 사람을 가장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그러한 arete가 무엇인가를 찾는 것으로 일관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찾아 자기네들에 있어서 구현하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요 삶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힘에 의한 최대한의 성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희랍인들의 삶이 과연 보람있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전혀 이 arete의 끈질긴 탐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희랍인들이 남긴 저 장관(壯觀)의 문화도 실은 arete의 추구에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arete를 찾는 도정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그러기에 Hesiodos의 [일과 나날, 289]는 말하지 않았던가?
"arete의 문전들에 높으신 신들은 땀의 노역을 마련해 놓으셨도다. 거기에로 이르는  길은 멀고도 가파르며 험하도다. "
호메로스야말로 그 참된 arete에로의 길을 처음으로 트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호메로스 이후의 이 arete의 추구는 헤시오도스, 핀다로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을 거쳐  면면히 이어져 오다가 마침내 소피스테스들에 와서  새삼스레 그네들의 좋은 소일거리의 구실로  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프로타고라스는  현자(sophistes)로서 그리고  "arete의 교사(arete didaskalos)"로서 자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소피스트들은 이처럼 스스로 현자로 자처하며 그 시대가 요구하는 arete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르치겠다고 내세운 arete는 개인 문제의 처리에 있어서 능함을 의미했다. 살라미스 승전 이후의  민주주의적 사회에 있어서 입신 출세한다는 것은 확실히 부러운 일이었고, 따라서 입신 양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것은 누구나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남보다 빼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국사의 처리에 있어서, 그리고 개인의 사사로운 일들이나 가사의 처리에 있어서 남달리 능하도록 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누구나 추첨에 의해서 민회(ekklesia)에 대표로 나가니 거기에서 제대로 발언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송사가 벌어졌을 경우에 스스로 변론을 훌룡히 해낼 수 있기 위해서도 요구되는 것은자기의 주장(logoi)을 폄에 있어서 능함(arete)이다. 당시에 수사술(rhetorike)이 흥했던 것도 바로 그  까닭이다. 강한 주장을 약하게 만들고, 약한 주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곧 수사술의 힘이요, 이 힘이 당시에는 한 사람으로 하여금 명성(doxa)을 얻게도 했고, 이 힘을 가진 자가 어디에서나 돋보이고 훌룡해  보였을 것이다. 소피스테스들이 가르친다고 내세운 arete, 즉  사람다움이나 빼어남 내지 유능함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소피스트들이 인간의 arete를 이런 관점에서 제시하는 것이, 비록 그것이 당시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것일 지라도, 그것이 안고 있는 가공할 결과를 직시한 이가 소크라테스이다.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의 시민들이 아니었으니, 무슨 소리를 한들, 아테네가 어떻게 된들 상관이 없었겠으나, 그것이 아테네의 운명을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갈지를 예견한 소크라테스였고, 과연 그 결과로 머지않아 아테네의 민가는 민중 선동가(demagogos)들의 독무대로 변하고 말았다. 역사의 이 무서운 흐름을 막기 위해 혼자서 발버둥치며 안타까와한 소크라테스였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도대체 사람의 사람다움, 즉 arete가 소피스트들이 내세우는 그런 것일 수 없음을 통박하는 분주한 행각에 나섰다. 이 행각에 있어서 그가 내세운 주장이 널리 알려져 있는 "arete(아레테)는 episteme(에피스테메, 앎)이다."라는 명언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소피스트들을 겨냥한 것이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말재간이나, 무엇이나 남달리 할 수 있다는 식으리 재주부림을 남다른  훌륭함(arete)으로 내세우는 소피스테스들(가령,  hippias같은 소피스테스는 자기의 재주를 자랑하기 위해 직접  자신이 만든 온갖 것들을  걸치고 올림피아 경기장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보편적인 지식(episteme)은 불가능하다는 소피스테스들, 이들에 대한  공박을 위해 이 주장을 그가 내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사람의 사람다움(arete)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 "구실(ergon)" 내지 "할 일" 즉, 인간 고유의 기능(ergon)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arete는 각자가 종사하는 분야나 그가 처한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훌륭한 제화공이 되려면, 훌륭한 농부나 정치가가 되려면, 각기 각자가  속하는 분야에서 해야 할 일(ergon)이 무엇인지에 대한 앎(episteme)을 가져야 한다. 훌륭함(arete)는 앎(episteme)없이는 실현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으로서의 훌륭함(arete)의 실현은 사람의 할 일 내지 구실(ergon)이 즉 사람의 고유한 기능(ergon)이 무엇인지에 대한 앎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모든 사람들한테 이것을 찾는 대열에 동참하도록 권고한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내 자신에 대한 앎(gnonai emauton)"의 강조로 나타났고, 이를 아폴론 신전의 잠언을 빌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라는 명언으로 나타냈다. 그가 "혼에 대한 보살핌(tes psyche epimeleisthai)"이나 "혼이 가능한 한  훌륭하게 되게끔" 혼에 관해서  마음을 쓸 것을 사람들에게 당부한 것도 같은 생각에서였다. 이 "혼에 대한 보살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의 강조는 혼(psyche)에서 인간 고유의 기능 내지 구실(ergon)을 찾아 낼 수 있음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그걸 소크라테스는 이성(logos)으로 보았고, 이성은 무엇보다도 말(logos)을 쓸 줄 아는 능력이다. 소크라테스는 logos의 능력을 인간의 혼에서 찾아, 이의 사용에서 사람의 사람다움(arete)을 발견하게 되고, 또 그것의 훌룡한 사용이 사람 구실(ergon)내지 사람으로서의 할 일이라 믿었다. logos의 훌룡한 사용을 통하여서만이 사람이 참된 앎에 이를 수 있고, 참된 앎(episteme)은 사람다움(arete)을 실현시켜 준다. 옳지 못한 것(adikia)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든가 "kakia(나쁨, 나쁜 상태, 악)는 무지(amathia)로 말미암은 것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명언들은 이러한 그의 생각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kakia는 arete에 대한 반대말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계승 발전됨을 보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막연히 혼을 보살필 것을 강조한 데 비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혼에서 nous(누스)를 찾아 제시한다. nous는 가장 고귀한 삶의 주체로서의 정신이며, 가장 고귀한 대상들을 아는 직관의 능력이요, 또한 그것에 의해서 알게 된 지식, 즉 직관지이다. 다시 말하면, nous는 인간다운 삶의 주체인 동시에 가장 고차적인 인식 주관이다. 그러므로 플라통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nous는 인간다움(arete)의 최상의 요건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의 "arete는 episteme이다."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arete는 nous이다."로 된다.
플라톤은 nous의 대상인 ta noeta(직관되는 것들), 즉 이데아 내지 형상(形相, eidos)들을 알게 되어, 그것들에서 삶의 지표를 얻게 될 때에야, 사람이 사람다움, 즉 사람으로서의 훌륭함(arete)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arete를 크게는 두 종류로, 그리고 [국가]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네 가지의 덕목으로 말하고 있다. [파이돈, 80b]에서 "절제라든가 정의 따위의 arete는 구태여 철학이나 이성이 동원되지 않고서도 습관과 단련만을 통해서도 이룩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arete에는 두 종류가, 즉 첫째로 철학이나 이성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과 둘째로 습관과 단련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 있다는 주장이다.
첫째것은 [국가]에서 들고 있듯 지혜(sophia)일 것임에 분명하고, 그 밖의 시민적인 덕들은 모두 둘째번 것에 포함될 것이다.


앞의 글에 대한 설명  

  1997/08/28 09:30 | 김완호 (nous71) | 조회 72  

  앞의 글은 성균관대 철학과에 계신 박종현 선생님의 논문에서 arete의 글을 빌린 것입니다.
그 논문은 " 희랍인들의 탐구 정신의 전개과정"라는 것인데 哲學硏究, 제5집에 나와있는 것입니다. 논문 발표는 1970년 11월입니다.
박종현 선생님의 논문 발표지를 모아 노은 것이 바로 종로서적에서 출판된 "희랍사상의 이해"입니다...
전 그 책의 제 1장 5절 인간 체제의 탐구중  arete의 탐구에서 이 내용을 그대로 빌려서 쓴 것입니다...
  더욱 자세한 것을 원하시는 분은 이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문살인의 전말 (김동렬 펌) [5] 철학자 2009.05.24 254914
공지 애도 노무현 [3] 철학자 2009.05.23 287861
공지 He will and should and must be back [5] 철학자 2009.04.18 261035
공지 그 때는 우리가 참 강했다 철학자 2008.02.22 276804
92 고등학생 2003.05.07 3462
91 니체의 선악관 [1] 대학생 2003.04.19 3284
90 니체가 준 선물~ [2] 자유의지 2003.04.06 3191
» 소크라테스 이전 서양고대철학사[펌] [1] 김재인 2003.03.27 8830
88 어느 책의 구절인지 좀 가르쳐 주세요..(니체) 앙그라 2003.03.19 3343
87 배윤희 2003.03.16 3589
86 주인장님, 님의 <차라투스트라~> 언제 나오나요? [1] 사색가 2003.03.13 3301
85 쇼펜하우어에 대하여 [1] 이상진 2003.03.13 3670
84 plato..와 반대되는 고대 또는 중세 철학자?? [1] 신지원 2003.02.22 4588
83 김재인님! 제발 오셔서 데리다와 후설의 철학을 검증해주세요! i2ndadam 2003.02.20 3474
82 카우프만... [3] 신정한 2003.02.07 3391
81 니체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입장을 알 수 있는 책이 어디 없나요? [2] 사색가 2003.02.07 3600
80 니체의 영원회귀사상.. [2] 서 세희 2003.02.03 3899
79 [re] 운영자님 질문답변부탁이요/!!!오늘까지!! [1] 김명철 2003.01.23 3309
78 운영자님 질문답변부탁이요/!!!오늘까지!! 서재현 2003.01.22 3348
77 까뮈,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1] 김명철 2003.01.12 3440
76 [re] 철학 무엇부터 시작해야하지? 김명철 2002.12.24 3527
75 철학 무엇부터 시작해야하지? 서준용 2002.12.22 3323
74 니체가 말하는 예술적 인간? [1] 최길혁 2002.12.12 3431
73 신문화사와 미시사에 대해서 좀 알 수 있을까요? 이현호 2002.12.09 3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