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과 문화론

* 김진석, <이상현실, 가상현실, 환상현실>(문학과지성사, 2001)에 대한 서평입니다. <출판저널> 2001년 5월경에 발표했던 글입니다.

  환상 현실 속의 기우뚱한 균형

  모든 일은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실은 흔히 망각되거나 소홀히 다루어져왔다. 철학이나 과학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은 현실에 대립되는 항을 설정하고 그것을 추켜올리곤 했다. 가령 하늘나라, 진리, 이상향, 사이버스페이스 등. 이런 항들의 대표적인 이름이 이상과 가상이다. 하지만 이 둘은 짝패를 이룬다. 좋고 완벽하고 온전한 것이라 상정된 이상은 끊임없이 현실을 폄하한다. 반면 최근에는 이상 따위는 없으며 오직 가상만이 있다고 한다. 온통 진짜 대 온통 가짜. 그러나 이 대립은 너무 경직되어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 그 둘은 거울상일 뿐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다른 판에 설정한다. ‘이상’이 아니라 ‘이상 현실,’ ‘가상’이 아니라 ‘가상 현실.’ 이상은 이상 현실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고 가상은 가상 현실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상 현실과 가상 현실은 현실의 양태이다. “이상과 가상은 현실을 초월하는 독립적인 실체도 아니고, 인간의 행위를 초월하는 순수한 의미도 아니”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이다. 이렇게 궁극에 남는 현실에 ‘환상 현실’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현실에 대한 남다른 집요한 천착은 저자가 이전의 다른 저서와 논문에서 지속적으로 해온 작업이다. 두 번째 저서부터 저자는 ‘초월에서 포월로’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작업하고 있는데, 『이상 현실, 가상 현실, 환상 현실』은 그 세 번째 권이다. 이 책의 중심 개념인 ‘환상 현실’은 포월(匍越)과 소내(疏內)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현실이다. 포월과 소내의 움직임은 다르게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표현을 입는다. 이 생소한 개념들은 새로우면서 중요한 만큼 상세한 해명을 요한다. 아니 그냥 상세한 해명이 아니라 ‘정확한 애매함’을 수반하는 해명을 요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해명이 요약정리의 방식으로 제시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초월에서 포월로’라는 기획도 단숨에 ‘요약정리’되지 않는, ‘요약정리’될 수 없는 현실을 대상으로 한다. ‘결국은’ 어떠어떠한 현실, ‘요약정리’하면 어떠어떠한 현실은 저자가 보는 현실이 아니다. 그런 현실은 차라리 이상 현실이거나 가상 현실이다.
  사람은 살다 보면 결국은 죽는다. 사는 것은 결국은 헛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이 ‘결국은’에도 불구하고, 이 ‘결국은’을 딛고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지 못하더라도 기기라도 한다. 이러한 나아감, 이러한 진행이 포월이다. 이 포월의 운동과 더불어 열리는 것이 소내이다. 안으로 통하는 길을 뚫고 안으로 소통하는 운동. 사람은 천 가지 이유 때문에 쓰러지지만 겨우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기도 한다. 사람은 그렇게 산다. 다시 산다.
  저자는 이렇게 살아가는 현실, 우리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현실을 환상 현실이라 이름한다. 현실이 곧 환상 현실인 까닭은 그것이 기우뚱한 균형 속에서 ‘몸뚱이를 가진 허깨비’처럼 존재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몇몇 저자들은 이상 현실과는 다른 가상 현실을 발견하고 찬양했으나 현실에 최종적인 선, 논리적일 뿐인 선을 긋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상 대 현실이 아니라 가상 대 현실. 그러나 논리적인 선은 논리적일 뿐이다. 현실적인 선은 논리적인 선과는 달리 너무 촘촘하거나 너무 성기다. 현실의 선은 많은 비약과 우회도 포함한다. 이상과 가상은 그 현실의 선을 너무 단순화하고 총체화하는 데서 성립했다.
  저자는 여러 예를 통해 현실에 대한 단순한 이해가 어떤 자가당착에 빠지는지 잘 보여준다. 육체의 움직임, 토끼와 거북의 경주, 스포츠, 이동통신, 노인에 대한 ‘정확한 애매함’을 지닌 분석은 이 책의 백미이다.
  이 책은 현재진행형 사유를 보여준다. 최종적인 평가는 나중에야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평가가 요약정리하는 평가에 불과하다면 많은 중간 평가가 필요하다. 저자는 자신의 외로운 작업에 개입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토로한다. 아주 유의미한 저자의 사유에 이토록 개입이 적은 것은 이 땅의 사유가 요약정리 또는 명확한 가르기에만 익숙한 탓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우리말로 ‘환상 현실’이라는 개념이 아무래도 너무 ‘긍정적인 균형’을 향한다는 느낌은 평자의 범박함일까 과민함일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문살인의 전말 (김동렬 펌) [5] 철학자 2009.05.24 255161
공지 애도 노무현 [3] 철학자 2009.05.23 288209
공지 He will and should and must be back [5] 철학자 2009.04.18 261695
공지 그 때는 우리가 참 강했다 철학자 2008.02.22 276993
152 [re] 이것좀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송일 2002.05.21 3479
151 철학강의 3. 실천으로서의 방법 김재인 2002.07.01 3478
150 김재인님! 제발 오셔서 데리다와 후설의 철학을 검증해주세요! i2ndadam 2003.02.20 3478
149 이글의 출처좀 알수있을까요? min 2005.05.29 3478
148 외국서적 번역 이대로 좋은가...짧은 시간에 졸속 양산 김재인 2004.03.10 3476
147 김재인님 번역의 <차라투스트라>는 언제 나오나요? 독자 2002.09.26 3472
146 디오니소스~~~? [2] 고등학생 2003.08.18 3471
145 고등학생 2003.05.07 3463
144 흉내 내기 김재인 2006.02.08 3462
143 푸코에 대해 궁금합니다. [4] 박창희 2004.04.12 3456
142 철학입문에 관한 질문입니다^^ [2] alexandro 2004.12.07 3455
141 까뮈,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1] 김명철 2003.01.12 3444
140 다시 불거진 '오역' 논란 김재인 2004.03.10 3442
139 [re] 아시는 분은 제발 답좀 해주세요.. ㅠㅠ 김명철 2002.06.08 3440
» 환상 현실 속의 기우뚱한 균형 (김진석 서평) 김재인 2002.06.26 3435
137 니체가 말하는 예술적 인간? [1] 최길혁 2002.12.12 3435
136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 말하지 않았다" 김재인 2005.12.02 3432
135 지나간 계몽과 도래할 계몽(데리다의 마지막 말) - 펌 김재인 2004.12.28 3430
134 [re] 황우석 관련 자료 [1] 김재인 2005.10.12 3422
133 서양철학의 계통별정리....제발 도와주세요ㅠ.ㅠ 강미혜 2002.10.24 3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