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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에서 그런대로 많이 쓰는 개념 중에 apperception이 있다. 이건 프랑스어로, 라이프니츠가 perception과 구별해서 '만든' 개념이다. 보통은 칸트가 이를 개정해 사용한 용법으로 쓰기 때문에 정확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라이프니츠 자신은 꽤나 간결하게 이 개념을 규정한다.

 

(* 철학사에서 칸트의 개념적 만행에 대해서는 전에 쓴 글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http://armdown.net/amor_fati/10776 )

 

칸트 연구자들을 따라 라이프니츠 전문 연구자들(그 수가 아주 적다)도 apperception을 '통각(統覺)'으로 옮기는데, 아마도 일본 칸트 연구자들의 선례를 따른 것이리라(내가 지금 서재에 있지 않아서 그런데, 한단석이나 최재희 같은 초기 연구자들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통각'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라이프니츠는 (좀 거칠게 설명하자면) 외부 세계에 대한 앎을 얻는 과정을 perception, 즉 '지각'이라 불렀다. 이 명사의 동사형 percevoir는 라틴어 percipere에서 왔으며 '뚫고가서(per) +붙잡는다(capere)'는 뜻이다. 오늘날 심리학에서 말하는 '지각'과 같은 뜻으로 보면 된다. 당시에 사용되던 representatio(표상)와 같은 뜻이기도 하다.

 

라이프니츠의 <단자론(monadologie, 모나드론)>을 보면, 그는 perception과 구별해서 자신이 perception을 지닌다는 걸 아는 것, 즉 conscience(의식)과 동의어로 apperception이라는 개념을 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self-awareness, 즉 '자각(自覺)'이다. 오늘날 심리학에서는 바로 이 의미로 apperception 개념을 쓴다. 철학자들의 용법과 차이가 나는 지점이 없진 않은데, 내 판단으로는 일본 연구자들이 번역해 놓은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한국의 철학 연구자들에게 잘못이 있어 보인다. 라이프니츠에 대해 논문을 쓰고 연구한 많은 한국 연구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읽었고 무슨 생각을 갖고 글을 썼나?

 

요점. 라이프니츠가 perception과 apperception을 구별한 건, 세계에 대한 단순한 '지각'과 그 지각에 대한 의식(반성)인 '자각'을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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