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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아래 글은 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는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내용을 상기해 보면서, 다음 물음에 답하세요. (답변 분량 자유)

문제1. 진실 또는 진리란 무엇이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의견과 필자의 주장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어디 있다고 보는지 설명하시오.
문제2. 필자의 입장이 적용될 수 있는, 글 안에 나타나지 않은 적절한 예를 찾아 설명해 보시오.

제출 방식. zen@armdown.net 으로 메일을 보내되, 첨부파일로 하지 말고 바로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목에는 [현대 철학의 흐름]이라고 말머리를 달고, 학번 학과 이름을 꼭 적어주도록 하세요. 기한은 5월 2일 자정까지입니다. 궁금한 사항은 커멘트를 달아주세요.

 

방법에 대한 실천학적 이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선입견이나 오해는 두 가지 의미에서 위험하다. 우선 그것이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게는, 자신을 진실로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베일 쓴 거짓의 정체를 간파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철학자들은 진실을 추구했지만, 진실을 가로막는 오류와 그것의 원인을 폭로하는 데에도 못지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오류의 가장 큰 원인인 선입견과 오해를 바로잡는 일은 진실에 접근하는 첩경이었을 뿐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이미 진실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오류의 원인을 제거하는 과정은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철학사를 통해 우리는 진실에 이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진실의 일부를 이루는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주시하자.

  베이컨(Francis Bacon)은 󰡔새로운 논리학󰡕(Nuvum Organum)에서 우선 ‘우상’을 지적하고 공격했다. 우상은 진상이 아니라 허상[헬라스어로 idola는 ‘그림자’를 뜻한다]이기 때문에, 또한 진상을 가리며 진상을 참칭하기 때문에 나쁘다. 따라서 진실을 알기 전에 진실에 이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네 가지 우상(곧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을 먼저 지적하고 그 힘을 저지하려는 실천이 필요했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도 󰡔제1철학에 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약칭 󰡔성찰󰡕)에서 자신이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여기서 중요했던 것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마련된 토대(‘생각하는 나’ 즉 ‘코기토’)보다는 이전까지 무심코 받아들였던 믿음들에 대한 파괴 행위 그 자체였다.

  이처럼 철학에 있어 순서상 앞에 오는 것은 진실 자체의 설파도 아니고 진실의 발견도 아니며 오히려 오류와 그 원인을 밝히고 파괴하는 실천의 과정 자체이다. 이러한 실천을 일컬어 방법이라 한다. 가끔 보면 진실 또는 진리와 거기에 도달하는 실천으로서의 방법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양자의 관계를 목표와 수단으로 설정한 까닭이다. 진실 또는 진리가 목표이고 거기에 이르는 수단이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해 방식은 ‘방법’이란 말의 어원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그 말은 ‘길 다음에 오는 것’(method = meta[다음, after] + rhodos[길, road])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목표(진실 또는 진리) - 길 - 길 따라 가기’ 순서로 우선순위가 매겨지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이해 방식이야말로 방법에 대한, 나아가 진실과 진리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이며, 바로잡아야 할 첫 번째 오류이다.

  주의 깊게 생각해보면 길은 따라가야 할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항상 ‘길 뚫기’ ‘길 트기’ 다음에 오는 그 무엇이다. 시인들의 구절을 통해 표현하자면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가 아니라 ‘길은 가면 뒤에 있다’인 것이다.

  가령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찾으려 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찾을까? 그것을 찾을 방법은 무엇인가? 헌데 방금 ‘찾는다(seek)’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그 말은 단순히 ‘발견한다(dis-cover)’는 뜻은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는 지금 어디엔가 있지만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록은 늘 깨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기서 ‘찾는다’는 것은 ‘만든다’나 ‘창조한다’는 말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만드는 행위가 발견하는 행위 앞에 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는 만들어 냄으로써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따라서 절대 불변의 진리와 같은 그 무엇이 있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이미 나 있는 길을 따라간다는 식의 비유는 적절치 않다. 반대로 진실은 개척의 산물이며 창조의 산물이라고 말해야 한다. 통상적인 이해 방식이었던 ‘목표(진실 또는 진리) - 길 - 길 따라 가기’는 이제 ‘(잠재적) 목표 설정 - 길 뚫기 - (현실적) 목표 생성’의 도식에 자리를 넘겨주어야 한다. 방법은 길트기로서의 실천이며 진실의 일부를 이룬다. 오류를 제거하는 실천이 첫 번째 실천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 진실과 방법의 통상적인 관계는 뒤집힌다. 그러나 ‘무엇’이 없이 ‘어떻게’가 있을 수 있느냐는 물음이 당장 제기된다. 찾아야 할 그 무엇(‘진실’)도 없이 어떻게(‘방법’) 찾으란 말인가? 그러나 찾아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대한 확고한 믿음을 제외하고는, 찾아야 할 그 무엇은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찾으려 했던 그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찾은 그것이 찾으려 했던 그것과 같은 것인지 영원히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본래 모르기 때문에 찾으려 했던 것이므로). 남는 것은 오직 뭔가 모를 진리를 찾으려 했는데 바로 그 무엇을 찾았다는 확신뿐이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방법이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절대불변의 진리를 찾아 왔다. 바로 그것만 포기하면 된다. 이것이 곧바로 모든 지식과 언어의 상대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으로서의 진리를 포기하고 형식으로서의 진실을 찾으면 된다. (내가 여기서 내용과 형식의 대립을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용은 형식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에 대립되며, 형식 또한 내용이 아니라 질료에 대립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추후에 다루기로 하자.) 아무튼 절대불변의 진리를 포기하고서도 우리는 진실을 찾는 방법에 대해, 진실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방법은 이처럼 길을 뚫는 도구이며 그 자체가 실천이다. 그것을 추구라 하건 시도라 하건, 실험이라 하건 긍정이라 하건 상관 없다. 무어라 불리건 간에 그것은 우선 진리의 ‘발견’이라는 허구를 분쇄하는 일을 하며 이어 진실의 ‘창조’라는 실천을 행한다. 그래서 니체는 ‘망치로 철학하기’를 말했다. 망치란 부수는 도구이자 만드는 도구이다. 철학사를 통해 보자면 이 점은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élix Guattari)는 정확히 지적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들을 관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는 우선 이데아라는 개념을 창조해야만 했다.” 진실과 진리는 방법보다 먼저 있는 것이 아니며, 방법은 창조라는 실천보다 먼저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창조라는 실천이 방법이라 해야 맞겠다.

  집을 오래 비워 두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타고 집이 상한다. 모든 것을 갉아먹는 시간의 힘은 때로 우리를 무력하게 할 정도로 경악스럽다. 청소를 하고 잘 가꾸지 않으면 집은 그대로 허물어진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집, 그것은 무수히 반복되는 청소와 더불어서만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자연과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닫힌 계(system) 안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엔트로피[entropy는 헬라스어로 ‘쓰레기’라는 뜻]가 증가한다. 세상은 결코 정태적이지 않아서, 도무지 내버려두는 대로 가만히 있지 않고 흩어진다. 세상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어지럽고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이요, 자신의 모든 자식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의 율법이다. 이 경우 집의 진실은 청소라는 방법, 청소라는 실천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원래부터 있는 아름다운 집이란 시간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개입과 간섭의 활동만이 아름다운 집의 진실에 도달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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