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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철학과 철학사 <니체사전> 촌평

철학자 2017.10.31 05:38 조회 수 : 15

* 2016년 10월 13일 페이스북 포스팅

 

친구인 일본인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와 올 여름 로마의 들뢰즈 학술대회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니체 얘기가 나왔는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니체와 영원회귀는 정말 수수께끼라고 술회했다. 고쿠분은 영민한 학자라서 "조금만" 노력하면 니체에 대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며 몇 마디 보탰었다. 모든 대화는 드렁큰 콩글리시와 쟁글리시로 진행되었다.

도서출판b에서 일본 고분도 출판사에서 1995년에 출간된 <니체사전>(이신철 옮김)이 한국어로 막 출간되었다길래 알라딘에 뜨자 마자(사실 페북에서 첨 보고 알라딘에 갔더니 아직 안 떠 있더라) 구매해서 공식 발행일 전날 밤에 '아모르파티'를 강의하는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수령했다. 며칠 째 이어지는 징헌 감기에 시달리며, 수요일 오전 홍익대에서 '리좀' 강의를 마친 후, 겨우 책을 이리저리 살필 시간이 났다. 중간에 병원에 다녀오느라, 저녁에서야 겨우 책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우선 이런 방대한 저작을 출간할 수 있는(더욱이 1995년에!) 일본 학계와 출판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현대철학사전' 시리즈 다섯 권을 번역한 이신철 박사의 노고에도 깊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난, <칸트사전>과 <맑스사전>은 구매했지만, <헤겔사전>과 <현상학사전>은 아마 앞으로도 구매할 계획이 없다). 이 사전 하나로 나는 일본의 니체 연구 수준을, 적어도 1995년까지의 그것을, 깊이 간파할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한 셈이다. 80000원의 정가가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책의 장점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장점은, 니체 자신의 중요한 많은 원문이 좋은 말로 번역되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사상적 선집'이라는 역할만으로도 기대에 값한다.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니체 연구자의 한 명으로서 <니체사전>에 대해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적고 싶다. 당연히 이 책을 통독하고 평한다는 뜻은 아니다. 본문 앞뒤에 있는 서문과 사용법, 해설, 판본비교, 문헌, 부록 따위를 읽었고, 본문의 중요한 몇 항목을 읽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으로는 '초인', '힘에의 의지', '운명에 대한 사랑', '즐거운 학문', '니힐리즘', '영원회귀', '자유의지', '베푸는 덕' 등의 비교적 긴 항목들(각각이 짧은 논문 한 편 분량)과 거기에서 *표로 지칭된 유관 개념 항목들이다. 사실 니체사전을 평가하기엔 이것으로 족하며(어지간한 단행본 한 권 분량은 본 셈이니), 더 보탤 얘기는 세부적인 사항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나는 1995년 이후 일본에서의 니체 연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문외한이며, 논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니체사전>을 통해 본 일본 학계의 니체 연구 수준은 실망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니체 학계의 중견 학자들(이름을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아는 분은 다 알리라)이 보여주는 수준보다는 조금 낫지만, 니체의 독해 수준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보수화된 채로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사전 항목에 '힘(Kraft)'이 송두리째 빠져 있는 동시에 이와 관련해서 '힘[力]'으로 번역한 말은 독일어 'Macht'라는 점이다. 물론 '의지(意志; Wille)'라는 항목도 없다. 사실 니체 해석에서 가장 쟁점인 것은 바로 Kraft, Macht, Wille, Wille zur Macht 이 네 개념 사이의 관계 아닌가! 니체의 다른 중요한 개념들이, 가령 '니힐리즘', '영원회귀', '넘는 인간'(초인), '운명애' 등이 논쟁점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열쇳말이 되는 것이 앞의 네 개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니체사전'은 이 논의와 대결을 회피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독자나 학생은 니체 본인에서 비롯한 인용을 제외하고 거기에 붙은 해석이나 해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최소한 내가 보기엔 니체의 사상과 어긋나거나 심지어 반대되는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판본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니체의 텍스트, 특히 1880년대의 유고들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이탈리아 학자 콜리와 몬티나리 두 사람에 의해 시작된 '고증판 전집'으로 논쟁이 일단락되었다(그루이터 출판사). 그 전에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푀르트터-니체와 친구 겸 제자 페터 가스트가 펴낸 1901년의 'Der Wille zur Macht" 및 그 증보판이 많이 활용되었고(딱 히틀러 취향으로 왜곡 편집된 출판), 그 문제를 보완하려 했던 작업이 뷔르츠바흐의 무자리온 판 전집이었으며, 슐레흐타의 세 권짜리 전집이 뒤를 이었었다. 몬티나리가 뷔르츠바흐 편집의 무자리온 판을 극찬하면서도 문헌적 한계를 지적했던 데 반해, <니체사전>의 편집자들은 이 판본을 아주 소홀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엘리자베스가 주도한 '역자적-비판적 전집(약칭 BAW)'이 본문 중에 다수 인용 전거로 언급되어 있으며, 또한 콜리와 몬티나리의 판본에서 온 유고들은 일본판 전집의 권수와 쪽수로 표기됨으로써 연구자들 간의 참조 호환성을 극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 말은 <니체사전> 집필에 참여했던 많은 필자들이 제각각의 판본을 인용했다는 뜻이다. 내 생각으론, 이 문제는 지금 표준판으로 거론되는 저작 전집 KSA 또는 KGW와 편지 전집 KSB 또는 KGB와 대조해서 거기에 맞췄어야 마땅하다. 가령 유고는 "KSA VIII 11 [411]"이라고 표기하면 모두 지칭 가능하다. KSA 전집(KGW와 번호 동일)의 니체 노트 8권의 번호 11의 411항이라는 뜻이다. 니체 사전에 출간된 저술들의 인용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니체사전>은 불행이도 이런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으며, 여러 판본(심지어 틀린 내용을 담았다고 해설된 판본까지도)을 무차별적으로 전거로 삼고 있다. 차라리 내 제안대로 하고, 니체의 모든 저술을 제목이 있을 경우엔 '제목'을 부록으로 시간 순으로, 색인을 달아 제시하는 편이 나았으리라.

항목 중에서 특히 불만인 건 '즐거운 학문'과 '베푸는 덕'이다. '즐거운 학문'이 불만인 건, 풀이 속에 그것이 '학문'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굳이 '학문'이라는 번역어를 고수하고 있어서이다. 이미 내가 다른 학술대회에서 정교하게 발표한 대목이지만 일단 저자를 따라 해당 대목을 옮겨 본다. (대안연구공동체의 '아모르파티' 연속 강의의 예술 관련 강좌 주제이다.) 아래 문단 전체가 인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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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인 <즐거운 학문>은 독일어에서도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표현으로, 친우들의 문의에 대해 니체는 "트루바두르(troubadour)의 gyya scienza를 생각했을 뿐이다 - 그것에 시도 들어 있다"고 대답하고 있지만[로데에게 보낸 편지, 1882년 12월 초], 그 때문인지 제2판에는 초판에는 없었던 "la gaya scienza"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다. 트루바두르란 12세기 초부터 13세기에 걸쳐 루아르 강 이남의 궁정을 중심으로 오크어를 사용하여 활약한 시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특히 프로방스의 음유시인이 유명하다. 다수는 기사 계급 출신으로 연애시와 풍자시, 대화시와 애도시 등, 우아한 서정시의 기교를 발전시켰다. gaya scienza는 그 시법을 가리키며, froeliche Wissenschaft라는 표현은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가 <인간성의 촉진을 위한 서간> 제7집(1796)에서 "gay saber, gaya ciencia"의 번역어로서 사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즐거운 학문'은 궁정 생활에 "즐겁고 마음 좋은 즐거움"을 가져오는 기교(Kunst)=배움(Wissenschaft)이라고 하여, 이것이 유럽 근대시의 '아침놀'이 되고, 이로부터 유럽에서 최초의 '계몽'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제84, 85 서간]. 니체는 1881년인가 82년의 것으로 생각되는 유고에서 "Gaya Scienza"라는 제목으로 트루바두르의 시형의 명칭을 열거하고 있으며[I . 12. 178], <선악의 저편> 260번에서는 유럽은 "프로방스의 기사=시인, 화려하고 창의가 풍부한 '유쾌한 배움'(gai saber)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거의 자기 자신을 빚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포겔프라이 왕자의 노래'가 "'유쾌한 배움'이라는 프로방스적인 개념, 시인과 기사와 자유정신 사이의 통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하여, "새로운 춤을 창조하는 자를 찬미하라! / 우리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춤을 춘다, / 자유로워라 - 우리의 예술이여, / 즐거워라 - 우리의 학문이여! ...... 트루바두르의 음유시인처럼 / ...... 춤을 추자"라고 노래하는 최후의 시 '북서풍에게'야말로 도덕을 넘어서서 춤추는 "완벽한 프로방스주의"라고 말하고 있다[이 사람 VII]. 니체에게 있어 '즐거운 학문'이라는 제목은 그 어원을 떠나 전문화된 연구에 힘쓰는 음울한 '학문'(Wissenschaft)에 맞서 그것과는 다른 양태를 갖춘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진리'를 찾아 고심하는 이성의 /pagnation/ 작업에 지친 정신이 남방의 세계에서 발견한 것이 '즐거운 학문'의 예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사전 508-5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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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이미 다루었고, 조만간 출판할 생각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 대목을 자세히 비판할 생각은 없다. 나로서는 "그 어원을 떠나"라는 필자 오이시 기이치로에게 몹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그 대목이 해석의 핵 아니던가!

다른 항목 하나는 '베푸는 덕'이라는 번역이다. 이 표현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절로 원어는 schenkende Tugend이다. 나는 보통 '증여하는 덕'으로 옮기며, verschenken과 구별해서 '선사'라는 말은 피하고 있다. 영어나 프랑스어에서는 '준다'는 정도의 말로 옮긴다(give, donner). '베푸는'이라는 표현이 일본어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말은 그 의미상 지나치게 "선한 쪽으로" 편향적이다.가령 '잘못을 베푼다'는 말은 어색하지만 '자비를 베푼다'는 말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니체한테 이 말은 보다 중립적으로 '준다', '증여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간에 말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보기에 나쁜 것도 많다. 지배력을 행사한다(준다), 명령을 준다, 자기 뜻을 관철한다(준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der Wille zur Macht와 같은 뜻을 갖는다. 내가 유독 이 항목에 문제를 삼은 까닭이 이제 드러난다. <니체사전>은 유순한 니체 상을 그려내는 데 몰두했거나, 아니면 결과적으로 그런 니체 상을 그려내고 말았다.

나는 이 책을 앞으로 굉장히 유용하게 활용할 것이다. 가려내는 눈, 선별할 능력이 내겐 있다. (제발 이런 대목에서 오만하다 탓하지 말아 달라. 애교로 넘어가면 어떠한가.) 많은 독자와 학생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다만 나로서는 니체의 독일어를 함께 보았으면 하고 권장한다. 목적이 '니체'라는 장신구를 걸치는 데 있지 않고 니체를 알고 싶은 거라면 말이다. 문제가 많은, 이 짧은 서평을 이 정도로 마친다.

아, 고쿠분이 니체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한 데에는 이와 같은 일본 학계의 수준이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참고할 만한 괜찮은 문헌이 없었다는 점. 그렇다면 최근 2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뜻일까? 아는 분은 정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추후 일본어로 번역된 고증판 전집의 쪽수를 KSA와 대조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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