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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사교육 주범은 공교육 실패가 아니라 지위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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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산업화 시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동력이었다. 그러나 2015년, 우리교육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가고, 교육이 세대 간 계층 대물림의 수단이 되고 있다. 사교육비는 중산층마저 빈곤의 딜레마에 빠트렸으며, 무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으로는 창의적 인재 육성은커녕 어떤 미래 시민도 살려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의 깃발을 올렸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로는 병증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교육이 우리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도려내고 다른 무엇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교육은 사회의 반영인 동시에, 사회의 모습을 통해 그 공동체의 교육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리라. 지금 한국교육의 위기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진 것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옳다. 그렇다면 위기의 한국사회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 역시 '교육'을 통한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교육 문제에 천착해온 교육 현장, 학계, 정치,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지혜를 듣는 '교육만이 대안이다' 시리즈를 통해, 위기의 한국을 구할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 교육체계의 틀은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자율과 다양성, 세계화를 기치로 단행된 이 개혁의 패러다임이 지난 20년간 한국 교육을 지배해왔다. 교육의 대전환을 모색하는 길은 현재의 시스템이 어떻게 이런 모양을 갖게 되었고 왜 문제점을 노정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삼정부의 5.31 교육개혁과 이후 정부들의 교육정책 평가를 담은 책 <5 .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이 지난 5월 출간됐다. 이 책의 공저자이자 참여정부 시절 안병영 교육부총리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하연섭 교수(연세대 행정학과)는 '상대적 성공'과 '상대적 실패'라는 말로 5.31 교육개혁을 평가했다.

- 2015년 한국교육을 얘기할 때 왜 5.31 교육개혁이 다시금 호명되는 것인가?

= 단순하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패러다임이 거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95년 이전에는 교육정책이라는 게 없었다. 대학정책은 '어떻게 데모 못하게 통제할까'였지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까'가 아니었다. 초·중등교육은 대중교육, 보통교육 단계였다. 50~60년대엔 문맹퇴치, 이후에는 팽창하는 산업에 인력을 공급하는데 초점을 맞췄었다. 세상이 변하니까 교육도 변해야 된다는 고민을 처음 했던 게 바로 5.31이 아니었나 싶다.

- 5.31 교육개혁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 '상대적' 성공이라면, 장기적 전망 하에서 한국교육의 큰 물줄기를 형성했던 것, 전무후무하게 굉장히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을 했던 것이다.
'상대적' 실패라면, 큰 사업 규모에 비해 너무 시간에 쫓겨서 수립됐다는 것, 그래서 정책을 만드는 과정이 탑-다운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교육 현업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부족했다. 교육 관료를 포함해 교단에 있는 분들까지, 당사자에게 어떤 인센티브가 주어질지에 대한 고민도 별로 없었다.

하연섭교수
하연섭 교수

- 진보적 교육학계에서는 5.31 교육개혁으로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공교육의 질적 저하와 경쟁교육의 심화를 유발했다는 평가도 한다.

= 5.31에 대한 색깔 씌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저 자신도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신자유주의에 상당한 비판을 퍼붓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책을 이데올로기적 기준으로만 단정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란 정책 운용에 시장적 요소를 얼마나 반영할 것인가이다. 시장이 아니면 뭐가 있나? '권위'가 있다. 어떤 영역에서는 시장이 필요하고 어떤 영역에서는 시장을 피해야 한다. 사안별로 봐야 한다. 시장적 요소가 있다고 무조건 틀렸다는 건 정당한 평가가 아니다.

- 이념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안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사람들의 반응에서 진영논리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실제 교육행정, 일선에 계시는 분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 일선 사람들이야 그게 신자유주의냐 아니냐는 별 문제가 아니다. 논평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지. 교단에 있는 분들은 각 사안에 대해 현실적인가 타당한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 책을 보며 합리적인 시각, 동의되는 지점도 많아서 놀랐다. "5.31은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일종의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 그때부터 일종의 편 가르기를 했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면 교수의 성과평가 강화 같은 것인데, 저는 그게 대단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교육이 미국과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우리도 좋은 교수는 많다. 딱 하나 차이는 성과를 못 내는 사람에 대한 페널티가 제대로 없다는 것이다. 대학이 성장하려면 그게 가능해야 한다. 이게 바로 시장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자리 나눠먹기식으로 그냥 가자고 할 수는 없지 않나.

- 성과평가가 논쟁이 되는 것은 기준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 문제 때문이 아닐까?

= 기준이 적합하냐는 것은 성과평가를 해도 되는가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기준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질 때까지 정교화 해나가면 된다.

- 지금 대학구조개혁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교수님들이다. 학생은 조직이 많이 와해되었고, 그나마 교수들이 문제제기를 한다. 그런데 이걸 밥그릇 지키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 대학구조개혁에서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는 사라졌고, '교수의 밥그릇'만 남은 상태다. 그걸 진보라는 이름으로 채색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대학구조개혁 논의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있느냐, 교육환경이 지켜지고 있느냐, 학생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정보가 공유되고 있느냐는 온데간데없다. 
대학구조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5.31 교육개혁 때문에 나와서 이렇게 대학이 늘어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 어쨌든 대학구조개혁은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시작된 것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입학정원 축소가 답이냐는 의견도 있다. 우선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노동-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방안도 거론된다.

= 정부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 정책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 나라 학생도 피하는 대학에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해서 학교를 살린다? 어느 유학생이 그런 학교에 가고 싶겠나. 앞으로 유학생을 20만 명 데려온다면, 상위 학교의 외국인 비율이 늘어나는 형태가 정상적이다.

-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평생교육 수요가 증가할 테니, 줄어드는 학령인구를 보완할 수 있다고도 하는데.

=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75%를 넘어서 세계 최고다. 이미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다른 나라만큼 평생교육 수요가 나올까?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평생교육이 필요한 영역이 어디이고 타깃이 누구냐에 따라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완벽히 공급자 위주다. 이건 실패할 것이다.
구인난에 허덕이게 되면, 가정에 있는 자원을 끌어내 평생교육 시켜야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평생교육을 강조하는 건 청년실업과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사람이 모자란 게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공계 경력단절 여성이다. 결혼 후 아이 키우고 5~7년 후에 돌아오려니까 과학기술도 변하고 실험기자재도 달라졌을 때,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건 쓰러져가는 대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닐 것이다.

- 대학구조개혁보다 열악한 수준의 교수-학생 비율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그 세금을 누가 낼 것인가가 문제다. 교수-학생 비율을 10명, 20명으로 확 줄이면 교육 효과가 나타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한두 명 줄이는 걸로는 돈만 들지 효과가 별로 없다.
지금 상태에서 구조개혁이 불필요하고 대안이 있다고 말하는 건..., 검증해보면 별로 효과적인 대안은 없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다.

5.31 교육개혁안 보고회의
김영삼 대통령 교육개혁안 보고회의 ⓒe영상역사관

- 교육뿐 아니라 재정 전문가이기도 한데, 박근혜정부의 교육개혁에서 가장 핵심인 교육재정개혁은 어떻게 평가하나?

= 기본적으로 누리과정은 중앙정부가 추가 재정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내국세의 20.27%가 내려간다. 2004년 노무현정부 이후 주기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학령인구가 줄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3분의2 밖에 안 된다. 하지만 교육계의 저항이 있으니까 예산당국에서 20.27%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지방에 보내는 돈의 규모는 똑같이 하면서 유아교육까지 책임지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유아교육과 보육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가니까, 교육감은 우리가 왜 어린이집까지 책임져야 하냐고 말하는 것이다. 이면에는 학생 한 명당 더 많은 재정지원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국민이 세금을 내면 애들한테 같이 가야지, 교육감 소관(유치원)이라고 세금이 가고 구청장 소관(어린이집)이라고 안 가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게 문제라면, 유아교육과 보육 통합을 다시 손 봐야한다.

- 교육재정이 부족해서 학교 수리를 못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한편에서는 교육감이 다른 사업에 우선 예산을 배정하고,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핑계를 대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 돈이야 항상 부족하다. 예산을 풍부하게 쓰는 데가 어디 있겠나. 예산을 쓰는데 있어 우선순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교육재정의 위기는 어찌 보면 과장된 측면이 있다. 내국세의 20.27%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기준은 일반자치단체에 교부하는 지방교부세(내국세의 19.24%)보다 비중이 높다.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교육을 위해 계속 돈을 더 쓰라는 합의는 국민들이 안 해주고 있다. 공교육을 위해 세금 내는 것 말고도 우리가 사교육에 엄청나게 지출을 한다. 그것들은 해결 못하면서 계속 공교육에 돈을 더 집어넣으라는 것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모든 정책의 판단 기준은 납세자의 눈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 누구나 교육 얘기를 하면 사교육과 이를 유발하는 입시제도, 두 가지를 문제로 꼽는다. 그런데 원인과 해법에 대한 생각은 엇갈린다. 교수님은 사교육의 원인을 '공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지위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하셨던데.

= 교육부에서 일하고 교육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느낀 것은 한국에서 교육은 독립변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관여하는 사람들은 독립변수라고 생각을 한다. 신기하게도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끔 학부모 대상 특강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한다.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이 전 세계 1위가 되었다고 칩시다. 시설, 선생님, 학업성취도, 여러 면에서 OECD 1위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자녀들 과외 안 시키실 거예요?" 학부모들이 딱 한마디로 "아니오"라고 한다. 교육 관료보다 훨씬 똑똑한 분들이다. 왜냐고 물으면 바로 답이 나온다. "SKY에 들어가려면 1만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위 싸움이란 얘기다. 지위경쟁인 것이다. 공교육의 질이 낮건 높건 상관없이 좋은 대학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사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면 왜 꼭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인가? 그래야 직업안정성이 보장된 곳에 취직할 수 있고, 보수도 높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사교육의 진짜 주범이다.

- 그럼 해결책은 뭘까?

= 대학의 위계질서는 어디서 나오나. 한국 산업구조와 인력을 가져다 쓰는 패턴에서 나온다. 공공과 민간부문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엄청난 격차가 한국 사교육의 주범이다. 이 문제를 배제한 채 입시제도만 고치고 교육만 얘기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이 구조를 온존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 사교육 문제 해결의 기본 동인은 경제민주화에서 찾아야 한다.
교육부장관만 되면 독일 갔다 와서 직업교육·실업계를 활성화하자고 한다. 그런데 마이스터고나 실업계 나와서 직업을 갖기 위한 조건이 있다. 일단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소득격차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실직해도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다시 고용 기회를 줘야 한다. 유럽에서 직업교육이 발달하고 대학을 별로 안 가는 나라의 공통점은 세금 많이 내는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맥락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교육을 얘기한다.
사교육의 원인을 공교육의 실패라고 보니까 사교육과 공교육이 암묵적 동맹자 관계가 된다. 사교육·과외비 문제가 모두 공교육 실패 때문이니까 공교육에 예산을 더 넣자, 대책 만들기 위해 교육 쪽에 연구비 더 줘야 된다, 이런 논리로 가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경쟁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암묵적인 공생관계다.

- 공생관계로 안 가는 방법은 뭔가?

=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상사가 한국의 전반적 구조와 동떨어진 게 아니다. 교육을 이 판으로 끌고 온 한국사회의 주범이 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이 진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5.31 교육개혁을 제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조망한 지점이 뭐냐면, 처음 출발과 달리 학교와 사회의 연계가 절연된 상태에서 정책이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연된 교육정책'이라고 표현했고, '권위주의적 자율화'로 귀결되었다고 비판했다.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을 사회 전체적인 구조와 연관된 속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번째는 교육정책을 논할 때, 학생 입장에서 봐야 하고, 납세자 입장에서 봐야 한다. 공급자 입장에서 봐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껏 진보-보수 논쟁에서 충돌 지점이 전부 공급자 쪽이다.

- 절연된 교육정책이 된 이유는 역량 부족도 있을 테고, 임기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도 있기 때문 아닐까. 책 말미에 교육정책의 미래방향으로 '미래한국교육위원회' 창설을 제언했다. 여러분이 유사한 제안을 하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지금껏 '위원회'라는 것이 성과를 낸 적이 있나,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싶다.

=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 정책은 안병영 선생님이 제안하신 부분이다.
앞으로는 5.31처럼 종합적 청사진을 내놓는 교육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20년 전에 비해서 한국사회가 어마어마하게 복잡해졌다. 이해관계도 복잡해졌다. 우리 교육을 어떻게 끌고 갈지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민하자 한다고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한국교육위원회'를 제안한 건 너무 정권 입장에서 이념적 시각으로만 교육을 보는 현실을 뛰어넘을 방법이 없을까 하는 차원에서다.

- '지위경쟁'을 막자는 취지에서 '국·공·사립대 공동선발제'나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같은 평준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 '공동학위제'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여전히 교육 내부에서만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는 점, 둘째는 지위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간과한다는 점이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지금은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을 하는 체제이다. 엘리트가 승자독식 하는 사회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이지, 엘리트를 키우는 구조는 만들어줘야 한다.

- 엘리트는 키우지만 승자독식은 안 되게 하는 대학체제는 어떤 것인가?

= 미국은 하버드나 예일대 가려고 우리만큼 난리 치지 않는다. 리버럴 아츠 컬리지(Liberal Arts College: 인문교양과목에 중점을 둔 학부 중심 4년제 대학) 나온 것을 교수들이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그런 비슷한 경쟁력을 가진 학교가 꽤 여러 개 있다. 우리는 학부생만을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학교가 있나? 그런 학교 10개만 키워서 연고대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사교육이나 치열한 입시 경쟁은 상당 부분 사그러들 것이다.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도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 섣부른 대학원 중심 교육이 아니라, 자원을 학부에 집어넣어서 교양교육과 전공교육을 제대로 하고, 외국어 교육도 제대로 하고, 산학협력도 시키는 것이다. 거기 나온 애들을 연구중심대학의 대학원에서 데려다 교육시켜도 잘 하더라, 기업에서도 연고대 출신만큼 일을 잘 하더라, 이 정도만 되면 된다. 그런데 이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한데, 제가 볼 때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와 경쟁하는 소수의 연구중심대학은 나름대로 그쪽으로 가고, 정말 학생들의 직업능력을 키워주는 학교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 대학평가를 재정지원과 연계하고 있다. 다양화와 특성화를 유도하는 재정지원 사업도 진행된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보다는 이 사업 저 사업 지원금만 쫓아다니는 대학이 많다.

= 한국 대학의 생존전략은 한국 재벌의 생존전략과 똑같다. 바로 '문어발식 확장'이다. BK 뜨면 다 대학원 중심, LINC 뜨면 다 산학협력, CK 뜨면 대학특성화 한다고 나선다. 그래서 한국 대학이 박사과정부터 평생교육까지 다 가지고 있다. 국립대학을 보라. 학과 수가 100개가 넘는다. 심한 곳은 140개다. 여기서 무슨 경쟁력이 나오며 무슨 인재를 키워내겠나.

-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하나?

= 대학 간 역할 분담을 유도할 수 있게끔 장기적 시각을 갖고 재정지원 사업을 해야 한다. 평가와 재정지원을 연계시키는 건 필요하지만, 정부가 전략적 고려 없이 재정사업을 우후죽순처럼 내놓으면, 대학은 재벌처럼 문어발 확장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대학을 다 죽인다.
교육재정이 우리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세금이 쓰여서 효용이 있는 대학에만 지원금이 가야 한다. 4년제 대학이 200개 정도 되는데, 재정지원을 50%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고등교육 정책에는 트릴레마(trillemma: 3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딜레마)라는 것이다. 교육기회를 확대해야 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제가 보기에 지원 범위를 50%로 제한한다면 대학을 대상으로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많고 강남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이 상위권 대학에 많이 진학하는 게 현실이다. 상위 50% 대학으로 재정지원을 제한하면 결국 있는 사람만 교육재정을 지원 받게 되는 셈 아닌가?

= 흙 속의 진주를 발굴하라는 게 입학사정관인데, 부모 잘 만난 애들 골라내는 제도로 전락했다. 그거 바꾸려면 연결되어 있는 나사고리를 꽤 많이 바꿔줘야 한다.
미국대학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과 낮은 대학의 격차가 거의 없는 편이다. 미국은 격차가 7.2배 정도다. 양질의 교육을 받는 애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한다. 10여 년 전 예일대 교수로부터 "낮은 등록금은 가난한 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자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얘길 들었다. 처음엔 동의를 못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좋은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 덕에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왔는데 등록금도 싸다. 게다가 취직도 잘 된다. 모든 게 잘 사는 집 애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저는 반값등록금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 정말 필요한 학생에게 집중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형편 안 좋은 아이들은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지원해주고, 돈 있는 집 아이들은 더 많은 등록금을 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게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영국의 등록금 정책이다. 보수당과 노동당이 합의해서 하고 있다.

- 그럼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하는 게 바람직한가?

= 국가장학금 형태보다는 든든학자금이 훨씬 더 적절한 지원방식이라 생각한다. 대학교육을 받은 후 다음에 돈을 벌어서 갚는 것 아닌가.
제가 정책연구를 해서 도입했는데, 처음에 국회의원들이 반대했다. 호주는 미상환률이 20%라며, 재정 부담을 어떻게 하냐고 했다. 당시 호주 교육부 관계자에게 디폴트가 20%나 되는데 어떻게 이런 제도를 운영하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말을 막더라. 자신들은 절대로 '디폴트'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면서. 그건 그냥 장학금 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 장학금 막 뿌리는 걸로 따지면 디폴트가 20%를 훨씬 넘는 상황이다.

- 청년들에게 학자금 대출이 큰 부담이다. 이러다 신용불량자 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도 크다. 빚을 진 상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출발 지점부터 불리한 것 아닌가?

= 든든학자금은 일정 소득 이상이 아니면 안 갚아도 되는 학자금 대출이다. 졸업하자마자 월별로 갚아야 하던 예전 모기지형 학자금 대출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대학교육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회 형평성에 맞는 것이다.

- 부실 대학의 자발적인 정리를 촉진하기 위해 사학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 그건 반대다. 교육부 사람을 만나도 이건 탁상공론이라고 말한다. 그 법이 통과되면 얼마든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구노력을 안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다. 망하게 하면 몇 백 억을 돌려받는데 왜 힘들게 대학을 발전시키겠나. 차라리 퇴출되는 대학의 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면서 퇴출을 유도하는 게 훨씬 낫다.

-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널려있는 상황에서 과연 부실사학들이 퇴출되려 할까?

= 시간이 지나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입학생 56만 명이 2020년엔 28만 명으로 줄어든다는 것 아닌가. 통계적으로 봐도 사라지는 대학이 당연히 나올 것이다.
년도 정해놓고 목표치대로 퇴출하려 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물론 나는 퇴출을 시장 논리에만 맡기자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전하듯 추진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대학구조 개혁의 근거가 되는 교육부의 대학평가 지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두 가지 이슈인 것 같다. 
첫째, 평가지표가 적정한가. 저는 꽤 괜찮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알기로는 정말 문제가 되는 대학을 솎아낼 수 있는 방향으로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해서 만든 것이다. 한두 개 지표의 배점에 따라 일부 대학의 운명이 영향을 받는데, 평가가 있는 이상 불가피한 일이다. 중간고사 40%, 기말고사 40%, 출석 20%를 반영해 성적을 주기로 했는데, 수업에 좀 많이 빠진 학생이 출석을 5%만 반영하면 나는 A+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쨌든 우리가 봐서 이해가 가능한 정도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평가절차가 정당한가. 이건 교육부가 좀 더 고민해야 한다. 평가에서 가장 중요건 것은 누가 해도 거의 동등한 결과가 나오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평가위원 오리엔테이션이나 실습이 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예산' 문제다. 이건 앞으로 과제라고 본다.

- 수월성 편향적이었던 5.31의 거시적 정책 지형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형평성을 제고하는 보완재로 '교육복지'가 처음 도입됐다. 최근 연구를 보면, 교육이 오히려 세대 간 계층 대물림 수단이 되고 있다. 이제 '보완재'만으로 교육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 사실 가장 중요한 교육복지는 교육을 통해서 그 사람의 소득창출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부터 대학, 직업세계까지 연결되는 차원의 교육복지를 고민해야 한다. 형편이 뒤처진 집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도 교육복지다.
한국 대학도 리치아웃 프로그램(Reach-out Program)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유명 교수들은 방학 동안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거기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다가 똑똑한 애는 다음 방학에 대학으로 불러 배울 기회를 준다. 그 아이들이 입학사정관을 통해 학교에 들어오고, 이후에 학교를 빛내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도 조금씩 학생을 찾아가는 교육이 시도되었으면 한다.
우리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학이 사회경제적으로 뒤처진 아이들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한다면 등록금 책정에 자율권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은 정부가 장학금과 생활비를 책임져주면 된다. 그게 좀 더 적극적 의미의 교육복지일 수 있다.

- 포스트 5.31을 고민할 때라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핵심 가치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5.31처럼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교육개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열린교육, 다양성, 정보화 등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들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눈뜨지 못했던 게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진행되는 상태에서 교육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진보적 교육정책이 좀 나오지 않았나. 일부 학자들은 그게 지금쯤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 때보다 불평등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5.31을 기획한 사람들한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먼 미래에 도달할 것을 정해놓고 해결책을 만드는 정책은 없다.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써 정책이 나오는 것이고, 그 대응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놓는 문제에 또 대응해나가는 게 정책이다. 5.31은 90년대 중반 당시 갓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사회에 필요한 교육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정책이 유도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사회에 일어난 엄청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맞물려서 우려할만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불평등, 지위경쟁, 아이들의 인성 문제 같은 것들이다.

- 그렇다면 김영삼정부 이후 정권들이 적절한 정책대응을 못했다는 의미인가?

=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었다. 5.31과는 다른 처방을 내놨어야 하는데, 15년 전 문제의식에 기초한 대응책을 그대로 가져왔다.

- 어떤 다른 처방이 있을까?

= 교육이 독립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한국 사회경제 구조의 변화에 맞춰 교육과 산업정책, 교육과 복지정책의 연계를 고민해야 한다. 교육학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싫어하지만, 한국의 교육학과는 사회과학대학에 있지 않다. 사범대학에 있다. 어찌 보면 다른 사회영역과의 연계를 고려할 수 있는 구도가 안 된다.

- 5.31 교육개혁의 상대적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김영삼 대통령이 '교육대통령'을 자임하며 교육에 지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꼽았다. 그만큼 교육개혁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교육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정치지도자에게 조언이나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

= 앞으로 '교육대통령'을 표방하는 사람은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교육이 굉장히 분열을 초래하는, 표 깎아 먹는 분야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부하고 싶은 건 세 가지다. 정권 차원에서 교육을 보지 말라, 단기적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 교육만 들여다보지 말라.

인터뷰 및 정리: 최해선 선임연구원

http://www.huffingtonpost.kr/institute-for-better-democracy/story_b_8035856.html?utm_hp_ref=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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