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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화론

* 2014년 9월 5일 페이스북 포스팅

 

1. 글의 취지에 동의
2. 인문학, 예술, 기술 등의 분화 또는 이합집산에 대한 설명에는 역사적 근거가 없음. 즉 틀린 얘기. 이 부분은 내가 곧 다시 정리할 예정.
3. 그렇긴 해도 과학기술의 힘에 대해 나는 거의 무한 긍정의 입장.
4. 내가 하는 철학, 미학, 예술 작업은 다른 설 자리가 있음을 확신.

근데 이 모든 논의의 뼈대는 이미 들뢰즈&과타리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밝힌 바 있음.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134177

 

무개념 융합과 인문학 오남용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융합의 시대를 맞아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인문학의 몰락을 걱정하는 장탄식이 쏟아지곤 했지만, 탈근대 담론과 더불어 통섭, 융합 등의 프로젝트가 급부상하면서 인문학 열풍을 넘어 인문학 과잉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인문학은 무슨 만병통치약인 양 여기저기서 끌어다 쓰는 괴물로 전락하고 있다. 인문학의 오용과 남용이 심각한 상태에 달하여 'CEO 인문학' 또는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 등과 같은 무개념 융합이 횡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으로서의 인문학과 지식인의 보편적 소양을 뜻하는 교양을 구분하지 않는 범주오류에서 나온다. 

인문학(humanities)은 문학, 역사, 철학, 사회학 등을 포괄하여 인간과 인류문화를 다루는 정신과학을 총칭하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핵심 의제로 알려진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의 인문학은 그릇된 번역이다. 잡스가 지목한 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즉 교양이었다. 그의 주장은 인문과학과 기술의 접목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 그리고 예술'을 기술과 접목하는 융합적 사유와 실천이었다. 

유럽 중세의 리버럴 아츠와 메커니컬 아츠에는 과학과 기술의 엄격한 구분이 들어 있다. 리버럴 아츠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합한 정신적 과학 영역이었다면, 메커니컬 아츠는 육체적 기술 영역이었다. 당시 대학에서 가르친 일곱 가지의 자유교양과목에는 인문과학(trivium) 분야의 문법, 수사학, 논리학과 자연과학(quadrivium) 분야의 천문, 음악학, 산술, 기하학이 함께 들어 있었다. 메커니컬 아츠(mechanical arts)는 직물, 농예, 건축, 무예, 상업, 요리, 금속세공 등 주로 노예나 평민 계층의 직업적인 기술 영역을 포괄했다. 

오늘날의 예술 영역에 속하는 건축, 조각, 회화 등은 장인들의 조합인 길드에서 가르치는 수공예의 일종이었다. 메커니컬 아츠가 노예나 평민 계층의 직업적인 노동에 관한 기술이었다면, 리버럴 아츠는 자유민의 교양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문학이 교양의 대세였으나, 자연과학이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은 이후에는 인간의 윤리와 감성, 이성에 관한 학문으로 재정립했고, 리버럴 아츠는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다루는 과학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오늘날 보편지식으로서의 리버럴 아츠는 자연과학과 공학,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예술 등을 포괄한다. 철학과 정신분석학이 더 이상 우주와 인간을 체계적으로 해명하지 못하는 반면, 물리학과 뇌과학은 우리의 인지와 감성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무개념 융합의 저급한 놀음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우선 인문학 오남용을 중단해야 한다. 보편적 지식으로서의 교양을 인문학과 등치하는 시대는 한참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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